위스키를 마시면서 “이 증류소는 진짜 장인 정신이 살아있구나” 하고 느낀 적이 몇 번 있는데, 발베니가 그중 하나다. 전통 플로어 몰팅을 아직도 직접 하고, 자체 쿠퍼리지(통 제작소)까지 운영하는 증류소라니. 거기에 캐스크 피니싱이라는 기법을 스카치 위스키 업계에서 최초로 도입한 곳이기도 하다. 발베니 12년 더블우드는 그 캐스크 피니싱의 시작점이 된 병인데, 한 모금 마시면 왜 이 기법이 업계 전체로 퍼져나갔는지 바로 이해가 간다.
발베니 증류소, 장인 정신의 결정체
발베니(The Balvenie)는 스페이사이드 더프타운에 있는 증류소로, 글렌피딕 바로 옆에 있다. 둘 다 윌리엄 그랜트라는 사람이 세운 형제 증류소라고 하는데, 글렌피딕이 가볍고 프루티하다면 발베니는 꿀 같은 달콤함과 묵직한 바디감이 특징이다.
발베니가 특별한 이유는 자체 플로어 몰팅, 자체 쿠퍼리지, 그리고 몰트 마스터 데이비드 스튜어트. 1993년에 캐스크 피니싱을 스카치 위스키에 최초로 도입한 인물이라고 한다. 버번 캐스크 숙성 위스키를 셰리 캐스크로 옮겨 추가 숙성하는 이 기법이 더블우드의 시작이었고, 이후 업계 전체로 퍼졌다.
스페이사이드 위스키 중에서도 발베니는 꿀과 바닐라의 독자적인 스타일로, 맥캘란의 진한 셰리향이나 글렌피딕의 가벼운 과일향과는 결이 다르다.
이 위스키의 탄생 배경
버번 캐스크의 바닐라와 꿀 위에 셰리 캐스크의 과일향과 스파이스를 한 겹 얹는 구조. “더블우드”라는 이름 자체가 두 종류의 오크를 거친다는 제조 방식을 설명하고 있다. 글렌모렌지의 라산타 등 수많은 증류소가 캐스크 피니싱을 도입했지만, 원조는 발베니 더블우드다.
발베니 대표 라인업
발베니의 라인업은 대부분 캐스크 피니싱을 기반으로 구성돼 있는데, 93년에 시작한 그 실험이 라인업 전체의 뼈대가 된 셈이다.

- 12년 더블우드 - 버번 + 셰리 캐스크 피니싱의 원조. 오늘의 주인공
- 14년 캐리비안 캐스크 - 럼 캐스크 피니싱, 트로피컬한 달콤함
- 17년 더블우드 - 12년의 업그레이드, 더 깊은 숙성감
- 21년 포트우드 - 포트 와인 캐스크 피니싱, 진한 베리 풍미
- 25년 싱글배럴 - 단일 배럴 한정판
발베니 12년 더블우드 테이스팅 노트
캐스크 피니싱의 원점, 발베니 12년 더블우드.

향 (Nose)
글라스에 따르자마자 꿀물 같은 향이 코를 감싼다. 글렌모렌지 넥타 도르보다는 약간 가벼운 느낌인데, 진한 꿀이라기보다 꿀을 물에 탄 정도의 밝은 달콤함이다. 거기에 감귤 주스 같은 시트러스가 섞이면서 전체적으로 부담 없이 가볍고 달달한 향이 만들어진다. 셰리의 꾸덕한 무게감보다는 시트러스 쪽 밝은 과일향이 더 앞에 서는 느낌이라, 코를 대는 순간 거부감 없이 “이거 맛있겠다”는 기대감이 바로 드는 종류의 향이다.
맛 (Palate)
입에 넣으면 부드럽고 멜로우한 질감이 먼저 느껴진다. 단 맛은 넥타 도르보다 덜하지만, 그래도 확실히 달콤한 축에 속한다. 혀 위에서 미끄러지듯 퍼지면서, 2~3초 후 아주 약간의 스파이스가 올라온다. 이 스파이스가 과하지 않고 살짝 얼굴을 비추는 정도라서, 달콤함의 흐름을 깨지 않으면서 악센트를 더해주는 역할을 한다. 버번 캐스크에서 온 바닐라와 셰리 캐스크에서 온 과일향이 하나로 녹아있는 맛인데, 이 두 캐스크의 조합이 “더블우드”라는 이름의 의미를 입으로 설명해주는 느낌이다. 40%라는 도수가 좀 더 높았으면 싶은 아쉬움이 살짝 있지만, 이 부드러운 질감 자체는 40%이기에 가능한 부분도 있으니 트레이드오프라고 봐야 할 듯.
피니시 (Finish)
미디엄 길이의 피니시. 향신료 느낌이 입 안에서 은근하게 맴도는데, 시나몬이나 넛맥 같은 따뜻한 스파이스가 마지막까지 존재감을 유지한다. 젠틀한 오크의 뒤맛이 깔끔하게 정리해주면서, 달콤한 여운이 마지막까지 남는다. 깨끗한 마무리가 인상적이다. 길이도 딱 적당해서 여운을 즐기다 보면 자연스럽게 잔에 손이 다시 간다.
발베니 더블우드에 어울리는 안주
- 브리 치즈 - 더블우드의 부드러운 꿀, 바닐라 풍미가 크림 치즈의 부드러운 텍스처와 찰떡궁합
- 훈제 연어 - 발베니의 과일향과 셰리 캐스크의 달콤함이 연어의 지방과 잘 어울린다
마치며
발베니 12년 더블우드는 “위스키 입문자에게 뭘 추천할까?” 하는 질문에 자주 등장하는 병인데, 그 이유가 있다. 부드럽고, 달콤하고, 복합적이면서도 어려운 맛이 없다. 위스키를 처음 마시는 사람도 한 모금에 “이거 맛있다”고 느낄 수 있는 접근성이 가장 큰 매력이다.
동시에 캐스크 피니싱의 원조라는 역사적 의미도 있어서, 위스키를 좀 마셔본 사람이 다시 돌아와서 마셔도 새삼 감탄하게 되는 면이 있다. 버번 캐스크와 셰리 캐스크의 조합이 만들어내는 풍미의 레이어를 알고 나서 다시 마시면, 처음 마실 때와는 또 다른 걸 발견하게 되니까.
음용 방식은 역시 니트가 기본. 물을 몇 방울 넣으면 꿀의 달콤함이 좀 더 열리는 느낌이 있어서 그것도 괜찮다. 하이볼로 만들어도 발베니의 달콤한 캐릭터가 탄산수와 잘 어울리는데, 12년짜리를 하이볼로 쓰기엔 좀 아까운 감이 있으니 그건 각자의 선택에 맡기겠다. 어떤 방식으로든 한 병 열어두면 금방 비워지는 타입의 위스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