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번에 처음 빠진 건 와일드 터키 101 한 잔 때문이었다. 스카치만 마시다가 호기심에 따라본 건데, 셰리 캐스크의 건과일 향이랑은 결이 완전히 달랐다. 입에 닿자마자 직설적으로 올라오는 캐러멜과 바닐라. 그게 버번이라는 카테고리에 대한 첫인상이었다.
버번 위스키란
버번(Bourbon)은 미국에서 만드는 위스키의 한 종류다. 곡물을 원료로 하는 위스키와 달리 포도를 원료로 하는 브랜디/꼬냑과는 풍미의 방향이 완전히 다르다. 법적으로 규정된 조건이 꽤 명확한데, 핵심만 추리면 이렇다.
- 원료의 51% 이상이 옥수수
- 새 오크 배럴 내부를 불에 그을려(차링) 숙성
- 160 프루프(80%) 이하로 증류
- 125 프루프(62.5%) 이하로 배럴에 넣을 것
- 미국 내 생산
“스트레이트 버번”이라고 라벨에 쓰려면 최소 2년 이상 숙성해야 하고, 4년 미만이면 라벨에 숙성 연수를 표기해야 한다. 켄터키 주에서만 만들어야 한다는 법은 없지만, 실제로는 버번의 95% 이상이 켄터키에서 나온다. 석회암 지반을 통과한 물이 철분이 적고 칼슘이 풍부해서 위스키 제조에 이상적이라고 한다.
새 오크 배럴이 만드는 차이
버번의 풍미를 결정짓는 가장 큰 요소는 새 오크 배럴이다. 스카치가 셰리 캐스크나 버번 배럴(중고)을 재사용하는 것과 달리, 버번은 반드시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새 배럴에서 숙성한다. 배럴 내부를 불로 그을리는 차링(charring) 과정을 거치면 나무 안쪽에 캐러멜화된 층이 생기는데, 여기서 바닐라, 캐러멜, 토피 같은 달콤한 풍미가 위스키에 녹아든다고.
| 구분 | 버번 | 스카치(싱글 몰트) | 아이리시 |
|---|---|---|---|
| 주원료 | 옥수수 51% 이상 | 맥아 보리 100% | 맥아ㆍ비맥아 보리 |
| 캐스크 | 신품 차드 오크만 | 버번ㆍ셰리 캐스크 재사용 | 버번ㆍ셰리 캐스크 재사용 |
| 증류 | 1~2회 | 2회(포트 스틸) | 주로 3회 |
| 대표 풍미 | 캐러멜ㆍ바닐라ㆍ옥수수 단맛 | 몰티ㆍ과일ㆍ피트 | 부드럽고 가벼운 몰티 |
| 최소 숙성 | 법정 규정 없음(스트레이트 2년) | 3년 | 3년 |
켄터키의 극단적인 기후도 한몫한다. 여름에 40도 가까이 올라가고 겨울에는 영하로 뚝 떨어지는데, 이 온도 차가 위스키를 배럴 안으로 밀어넣었다 빼내는 작용을 반복시킨다. 나무 속 깊이 스며들었다가 다시 빠져나오면서 오크의 풍미 성분을 더 많이 끌어내는 원리라고. 같은 원액이라도 켄터키에서 숙성하면 다른 지역보다 맛이 빠르게 발달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버번의 대표적인 풍미
버번을 처음 접하면 가장 먼저 느끼는 건 달콤함이다. 옥수수에서 오는 곡물의 부드러운 단맛, 새 오크에서 온 바닐라와 캐러멜이 겹쳐지면서 스카치와는 완전히 다른 인상을 준다.
캐러멜ㆍ바닐라 - 차드 오크에서 추출되는 버번의 시그니처. 어떤 버번을 마셔도 이건 거의 공통으로 깔린다.
스파이스 - 호밀(rye)이 매시빌에 포함된 비율에 따라 후추, 시나몬 같은 매콤함이 달라진다. 와일드 터키 레어 브리드처럼 호밀 비율이 높은 버번은 스파이시한 킥이 강하다.
오크ㆍ탄닌 - 새 배럴을 쓰니까 오크의 영향이 스카치보다 훨씬 직접적이다. 숙성이 길어질수록 오크의 탄닌과 우디함이 강해지는데, 와일드 터키 12년을 마셔보면 장기 숙성 버번에서 오크가 어떤 깊이를 만들어내는지 확실히 느낄 수 있다.
과일 - 체리, 오렌지 필, 바나나 같은 과일 뉘앙스도 버번에서 자주 등장한다. 특히 잭 다니엘 싱글배럴에서 느꼈던 바나나 향은 꽤 인상적이었다.
배럴 엔트리 프루프의 비밀
버번 맛의 차이를 만드는 숨은 변수 중 하나가 배럴 엔트리 프루프(Barrel Entry Proof)다. 증류한 원액을 배럴에 넣을 때의 도수를 말하는데, 법적 상한은 125 프루프(62.5%)다. 대부분의 증류소가 이 상한에 맞춰서 넣는 반면, 와일드 터키는 115 프루프(57.5%)로 넣는다. 10 프루프 차이가 별거 아닌 것 같지만, 도수가 낮으면 물이 더 많으니까 오크랑 상호작용이 달라진다. 러셀 리저브 싱글배럴을 마셔보면 이 차이가 풍미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체감할 수 있다.
테네시 위스키와의 차이
잭 다니엘로 대표되는 테네시 위스키는 버번의 모든 조건을 충족하면서, 추가로 “링컨 카운티 프로세스”라는 공정을 거친다. 슈가 메이플 숯을 쌓아놓은 통에 원액을 한 방울씩 통과시키는 차콜 멜로잉(Charcoal Mellowing)인데, 이 과정이 원액의 거친 면을 깎아내면서 매끈한 질감을 만든다. 법적으로는 버번으로 분류해도 문제없다고 하는데, 테네시 주 법에 따라 별도로 “테네시 위스키”라는 카테고리를 쓴다.
같은 싱글배럴끼리 비교해보면 차이가 명확하다. 와일드 터키 쪽의 레어 브리드나 러셀 리저브 싱글배럴이 날것의 묵직한 힘으로 승부한다면, 잭 다니엘 싱글배럴은 차콜 멜로잉이 만드는 부드러운 바디감이 특징이다. 어느 쪽이 더 좋다기보다 완전히 다른 결의 매력이라고 본다.
버번 입문, 어디서 시작할까
버번을 처음 시작한다면 버팔로 트레이스나 와일드 터키 101이 가장 무난한 출발점이다. 50.5%라는 적절한 도수에 버번의 기본 요소 - 캐러멜, 바닐라, 스파이스 - 를 고루 갖추고 있어서 버번이 어떤 위스키인지 파악하기 좋다. 여기서 마음에 들었다면 다음 단계는 취향에 따라 갈린다.
스파이시하고 강렬한 쪽이 끌린다면 와일드 터키 레어 브리드. 배럴 프루프 58.4%의 캐스크 스트렝스를 그대로 만날 수 있다. 도수보다 숙성의 깊이가 궁금하다면 와일드 터키 12년으로 가면 된다. 부드러운 텍스처를 원한다면 잭 다니엘 싱글배럴 100 프루프로 테네시 위스키의 차콜 멜로잉을 경험할 수 있고, 포트 스틸 블렌딩의 매끈함은 우드포드 리저브 쪽이다. 싱글배럴의 개성이 궁금하면 러셀 리저브 싱글배럴이 답이고, 9년 숙성의 묵직한 프리프로히비션 스타일을 원한다면 납 크릭 9년 쪽으로 가는 게 맞다.
결국 어떤 결을 원하느냐의 문제
버번은 스카치보다 훨씬 직관적이다. 새 오크에서 오는 달콤함이 전면에 나서니까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이 “맛있다”가 바로 온다. 매시빌 비율이니 배럴 엔트리 프루프니 하는 건 나중에 파도 늦지 않다. 스카치만 고집하던 사람도 한 병 정도는 버번으로 틀어볼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