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만 원대 싱글몰트 중에서 이 정도 복합성을 가진 병이 있나 싶었다. 벤리악 12년 더 트웰브(The Twelve)는 셰리, 버번, 포트 세 가지 캐스크를 동시에 쓰는데, 그게 억지스럽게 뒤섞인 게 아니라 하나의 흐름으로 잘 녹아들어 있다. 레이첼 배리의 블렌딩 실력이 그냥 나온 게 아니라는 걸 보여주는 병.
벤리악 증류소와 더 트웰브
- 46% ABV / 논칠필터링, 무색소
- 캐스크: 셰리 + 버번 + 포트 쓰리 캐스크 매추레이션
- 증류소: 스페이사이드 엘긴 남쪽, 1898년 설립
- 소유: 브라운포먼 (2016~), 마스터 블렌더 레이첼 배리
1898년에 세워졌다가 2년 만에 문을 닫고 65년간 잠들어 있었다고 한다. 2004년 빌리 워커(글렌드로낙을 되살린 인물)가 인수하면서 전환점을 맞았고, 이후 브라운포먼 인수를 거쳐 지금의 라인업이 완성됐다. 스페이사이드 증류소인데 다양한 캐스크 조합으로 전형적인 스페이사이드보다 깊은 복합성을 보여주는 쪽이다.
벤리악 대표 라인업
벤리악은 논피티드와 스모키 라인을 병행하는 독특한 구조를 갖고 있다.
- 더 오리지널 텐(10년) - 입문 라인. 셰리/버번/포트 쓰리 캐스크
- 더 트웰브(12년) - 오늘의 주인공. 쓰리 캐스크의 복합성이 본격적으로 열리는 지점
- 더 스모키 텐 / 스모키 트웰브 - 피티드 스페이사이드라는 독특한 포지션
- 21년 / 25년 / 30년 - 장기 숙성 프리미엄 라인
- 몰팅 시즌 - 플로어 몰팅 전통을 기리는 한정판
벤리악 12년 테이스팅 노트

향 (Nose)
글라스에 따르면 셰리의 달큰한 향이 먼저 올라온다. 건과일 향이 진한데, 끈적이는 느낌이 있다. 메이플 시럽을 뿌린 것 같은 달콤함 아래에서 오크의 묵직한 향이 받쳐주고, 미세한 스파이스가 단조로움을 잡아준다. 포트 캐스크의 영향인지 살짝 베리류의 과일 향도 얼핏 느껴진다. 시간을 두고 천천히 맡으면 레이어가 하나씩 열리는 타입.
맛 (Palate)
첫 모금에서 셰리의 단맛이 확 치고 들어온다.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 없이 “달다, 맛있다”가 먼저 드는 종류. 그 뒤로 사과와 서양 배 같은 과일 느낌이 이어지고, 오렌지 껍질의 시트러스도 조금 스친다. 버번 캐스크에서 온 바닐라와 오크의 터치가 중반부에 나타나면서 셰리의 단맛을 잡아주는데, 이 밸런스가 꽤 좋다. 46%답게 알코올 자극은 거의 느껴지지 않고, 입 안에서의 질감이 부드럽다.
피니시 (Finish)
헤이즐넛의 고소함이 먼저 올라오고, 모카 커피 같은 쌉싸름함이 뒤를 잇는다. 포트 캐스크의 베리류 달콤함이 여운으로 남으면서 피니시를 풍성하게 마무리해준다. 길이는 미디엄 정도인데, 단맛과 견과류의 고소함이 입 안에서 꽤 오래 맴돈다.
벤리악 12년에 어울리는 안주
- 다크 초콜릿 - 피니시의 모카, 헤이즐넛 노트와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카카오 70% 이상 짜리가 잘 맞는다
- 건과일 모둠 (건크랜베리, 무화과) - 셰리 캐스크의 건과일 풍미를 안주로 그대로 반복하는 클래식한 조합
마치며
7만 원대에서 셰리, 버번, 포트를 한 병에 담아내고, 그게 실제로 잘 어울린다는 게 벤리악 12년의 가장 큰 매력이다. 같은 가격대의 셰리 캐스크 위스키와 비교해 봐도 - 글렌파클라스 15년은 정통 셰리 한 우물을 파는 스타일이고, 벤리악은 쓰리 캐스크로 여러 방향의 풍미를 한 병에 담아낸 쪽이다. 맥캘란 12년 셰리 오크의 절반도 안 되는 가격에 이만한 만족도라니, 가성비로 따지면 이 가격대에서 이길 병이 많지 않다.
셰리 계열이 취향인데 매번 비싼 병만 사기 부담스럽다면, 벤리악 12년은 데일리로 두고 마실 만한 선택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