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가볍게 한 잔 하려고 꺼냈다. 버팔로 트레이스. 버번 입문 3대장 소리를 듣는 녀석이다. 그런데 이 별명보다 더 흥미로운 사실은 따로 있다. 버팔로 트레이스가 나오는 그 증류소에서 패피 밴 윙클까지 같이 나온다.

한 지붕 아래의 라인업
켄터키 프랭크포트 사제락 컴퍼니 소유 증류소다. 45% ABV 90 프루프, NAS(추정 7~8년). 매시빌은 비공개지만 옥수수 비율이 높고 호밀이 적은 쪽으로 본다. 같은 증류소에서 이글 레어, 블랑톤, 패피 밴 윙클까지 다 나온다. 그래서 버팔로 트레이스를 마실 때마다 묘한 위치감이 따라붙는다. 고가 라인업으로 가는 사람이라면 어차피 같은 집에서 출발한 셈이라는 사실 위에 있는 병이다.
이 출발선의 가격은 합리적이고 도수는 45%다. 입문용이라고 부르기에는 라인업의 이력이 너무 화려하고, 그렇다고 매니아 영역에 두기엔 가격이 그쪽이 아니다. 평소 마시는 위치는 결국 매일 잔을 들기에 부담 없는 자리.
버팔로 트레이스 리뷰
향
바닐라랑 캐러멜이 동시에 온다.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균형이 잡혀 있는 게 버팔로 트레이스의 특징이다. 납 크릭 9년의 묵직한 캐러멜이나 우드포드 리저브의 꿀 같은 바닐라와 비교하면, 버팔로 트레이스는 둘 다 적당한 농도로 섞여 있다. 그 위로 오렌지 필의 시트러스 향이 살짝 얹히고, 갈색 설탕의 달콤함이 전체를 감싼다. 45%라서 알코올 자극도 적당하다. 코를 너무 가까이 대도 밀어내지 않는다.
맛
바닐라의 달콤함이 부드럽게 깔리면서 시작한다. 와일드 터키 레어 브리드처럼 입을 때리는 타격감은 아닌데, 그렇다고 40%짜리처럼 밍밍하지도 않다. 개인적으로 45%가 딱 좋은 지점에 걸쳐 있다고 본다. 캐러멜의 달콤함 뒤로 약간의 스파이스가 올라오는데, 호밀에서 오는 후추 느낌이 가볍게 스치는 정도다. 토피와 약간의 체리 뉘앙스도 중반부에 고개를 내민다. 바디감은 중간. 오일리하지도 않고 가볍지도 않은, 딱 편하게 마실 수 있는 무게감이다.
니트로 마셔도 충분히 부드럽고, 온더락으로 하면 시트러스 쪽이 좀 더 열린다. 하이볼 베이스로도 잘 어울리는데, 이 가격대에 하이볼로 쓰기엔 좀 아깝다는 생각도 든다.
피니시
미디엄 렝스. 바닐라와 오크의 따뜻한 여운이 은은하게 이어진다. 잭 다니엘 싱글배럴처럼 깔끔하게 끊기는 타입은 아니고, 캐러멜의 잔향이 조금 더 머무르면서 부드럽게 사라진다. 자극적이지 않아서 안주 한 입 먹고 다시 잔을 들게 되는 피니시.
“입문 3대장”이라는 평가에 대해
이 별명은 절반 정도만 정확하다. 가격과 도수, 무난한 균형 잡기를 보면 입문이라는 라벨이 맞다. 다만 버팔로 트레이스가 입문이라는 단어로만 정리되면 같은 증류소에서 나오는 다음 단계 - 이글 레어 10년, 블랑톤 - 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라인이 잘 안 보인다. 같은 매시빌 계보의 다른 표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를 미리 한 번 맛보는 자리에 가깝다.
납 크릭 9년의 묵직함이나 와일드 터키 레어 브리드의 강렬함과 비교하면 버팔로 트레이스는 한 발 뒤로 빠져 있다. 그게 약점이라기보단, 매일 꺼내 마시기에 가장 자주 손이 가는 이유에 가까웠다. 한 병 두고 편하게 따라 마시기 좋은 버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