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렌알라키 10년 캐스크 스트렝스의 강렬한 인상이 있고 나서, 자연스럽게 이 증류소의 다른 라인업에도 손이 갔다. 15년을 처음 마셨을 때의 느낌은 10년 CS와는 완전히 다른 방향이었다. 10년 CS가 풍미의 폭발이라면, 15년은 풍미의 포옹 같은 느낌이랄까. 버터스카치, 토피, 꿀이 부드럽게 감싸안는 그 질감에 한번 빠지면 좀처럼 빠져나오기 어렵다.
글렌알라키 증류소 소개
글렌알라키에 대해서는 10년 CS 리뷰에서 자세히 다뤘으니 간단하게만. 1967년 설립, 스페이사이드 아벨라워 소재, 2017년 빌리 워커 인수. 모든 정규 라인업이 46% 이상, 논칠필터드, 무색소 원칙. 글렌피딕이나 글렌리벳의 가벼운 과일향과는 상당히 다른 캐릭터다.
이 위스키의 탄생 배경
워커가 인수 전까지 원액 대부분은 블렌디드 위스키 재료로 쓰였다고 한다. 워커가 원액들을 점검해서 싱글 몰트로 내보낼 만한 것들을 추려냈고, 15년은 PX 셰리, 올로로소 셰리, 레드 와인, 버진 오크 네 가지 캐스크를 조합하는 구성이다.
코어 레인지에서 15년의 포지션이 절묘하다. 12년보다는 숙성의 깊이가 있으면서 18년처럼 가격 부담이 크지 않은 지점. 워커 본인도 15년이 이 증류소의 프루티한 캐릭터를 가장 잘 살린 숙성 연수라고 했다더라.
글렌알라키 15년 캐스크 구성
네 가지 캐스크의 원액을 배팅해서 만드는데, 각각의 역할이 다르다.

페드로 히메네스(PX) 셰리 캐스크 - 건포도, 무화과, 진한 캐러멜 같은 달콤한 풍미의 핵심. PX 셰리 자체가 달콤한 디저트 와인이다 보니, 15년의 단맛은 대부분 여기서 온다.
올로로소 셰리 캐스크 - 견과류, 말린 과일, 묵직한 바디감. PX가 달콤함을 앞세운다면, 올로로소 쪽에서 깊이와 복합성이 나온다. 스파이시한 뉘앙스의 출처이기도 하다.
레드 와인 캐스크 - 잘 익은 베리류의 과일 풍미와 부드러운 타닌감이 특징이다. 셰리와는 또 다른 결의 과일 캐릭터가 끼어드는 게 재미있다.
버진 오크 캐스크 - 새 오크통에서 숙성한 원액. 바닐라, 코코넛, 토스트 같은 우디한 캐릭터를 깔아준다. 셰리 캐스크만 쓰면 자칫 너무 무거워질 수 있는데, 버진 오크가 그걸 잡아준다.
빌리 워커가 어떤 비율로 배팅하는지는 공개하지 않지만, 마셔보면 PX의 달콤함이 앞에 서고, 올로로소와 레드 와인이 깊이와 과일감을 채우고, 버진 오크가 마무리를 잡는 느낌이다.
글렌알라키 15년 테이스팅 노트
46% 병입에 논칠필터드. 색상은 진한 금빛에서 호박색 사이 어딘가. 인공 색소를 넣지 않는데도 이 정도 색이면 셰리 캐스크의 영향이 확실하다.

향 (Nose)
코를 가져다 대면 버터스카치가 먼저 반겨준다. 달콤하고 부드러운 그 향이 편안하게 올라오는데, 버터스카치 사탕을 입에 물고 있을 때 나는 그 향과 거의 똑같다. 거기에 구운 사과 - 시나몬을 뿌려서 오븐에 구운 사과 같은 따뜻한 과일 향이 깔리고, 밀크 초콜릿의 부드러운 카카오 뉘앙스도 느껴진다.
시간을 좀 더 두면 바닐라와 은근한 오크 향이 올라오고, 전체적으로 따뜻한 빵집에 들어간 것 같은 편안한 분위기의 향이다. 10년 CS에서 느껴졌던 그 강렬한 임팩트는 없지만, 대신 이쪽은 향만 맡고 있어도 기분이 좋아지는 종류의 부드러움이 있다.
맛 (Palate)
첫 모금에서 크리미한 질감이 확 와닿는다. 토피와 말린 살구의 달콤함이 입 안을 부드럽게 감싸는데, 그 위에 꿀과 넛맥의 따뜻한 스파이스가 얹혀진다. 설탕에 졸인 생강(캔디드 진저) 같은 독특한 달콤-매콤한 뉘앙스도 있어서, 단순히 달기만 한 게 아니라 층이 있다는 느낌이 든다.
질감이 실키하다. 논칠필터드의 영향인지 입 안에서의 촉감이 비단결처럼 매끄럽고, 이 부드러운 마우스필이 15년의 가장 큰 매력 포인트다. 10년 CS가 시럽처럼 두꺼운 질감이었다면, 15년은 생크림처럼 부드러운 질감이라고 할 수 있다.
중반부터는 오크의 영향이 살짝 고개를 들면서 약간의 타닌과 함께 드라이한 뉘앙스가 나타나는데, 이게 달콤함이 과하지 않도록 균형을 잡아준다. 네 가지 캐스크 배팅의 효과가 바로 이런 부분에서 드러나는 거다.
피니시 (Finish)
피니시는 중간에서 약간 긴 편. 따뜻한 바닐라와 은근한 스파이스가 목을 타고 내려가면서, 달콤한 여운이 부드럽게 이어진다. 10년 CS처럼 수 분간 입 안에 남아있는 강렬한 피니시는 아니지만, 대신 은근하게 오래 가는 포근한 달콤함이 있다. 삼킨 후에 남는 건 버터스카치와 약간의 꿀, 그리고 따뜻한 오크의 잔향. 마치 따뜻한 담요를 덮은 것 같은 편안한 마무리다.
글렌알라키 15년에 어울리는 안주
- 숙성 체다 치즈 - 네 가지 캐스크의 복합적인 풍미가 숙성 치즈의 깊은 고소함과 잘 맞는다
- 다크 초콜릿 - PX 셰리에서 오는 건과일의 달콤함이 카카오의 쓴맛과 조화를 이룬다
마치며
글렌알라키 15년은 한마디로 “편안한 위스키”다. 10년 CS 같은 강렬한 임팩트를 원한다면 실망할 수도 있지만, 하루의 끝에서 한 잔 홀짝이며 긴장을 풀기에는 이만한 위스키가 없다. 도수도 46%로 적당하고, 풍미도 공격적이지 않으면서 충분히 깊이가 있어서 위스키 좀 마셔본 사람도 질리지 않는 수준이다.
개인적으로 같은 증류소의 10년 CS와 15년을 번갈아가며 마시는 걸 좋아한다. 기분이 뭔가 강렬한 걸 원할 때는 10년 CS, 편하게 쉬고 싶을 때는 15년. 같은 글렌알라키인데 성격이 이렇게 다르다는 게 재미있다.
가격도 15년 숙성 셰리 위스키 치고는 꽤 합리적인 편이다. 이 가격에 논칠필터드, 무색소, 46% 병입이면 가성비로는 최상위권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빌리 워커가 글렌알라키에서 보여주고 있는 것들 - 좋은 캐스크 선별, 적절한 배팅, 그리고 위스키 본연의 풍미를 해치지 않는 병입 원칙 - 이 전부 이 병 안에 담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