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렌알라키 10년 캐스크 스트렝스 배치12. ABV 59.7%, 논칠필터드, 무색소. 배치마다 캐스크 구성이 달라지니까 사실상 한정판이나 마찬가지다. 우성그린마트 매대에 떨어져 있어서 온누리 끼우고 13만 후반에 빼왔다. 이번 배치12는 올로로소 셰리 캐스크 비중이 꽤 높은데, 그래서인지 글라스에 코를 대면 다크 초콜릿이랑 체리 콤포트가 바로 올라온다.
빌리 워커가 살려낸 스페이사이드
글렌알라키는 1967년 스페이사이드 아벨라워 근처에 세워졌다. 오랫동안 블렌드용 원액 공급소 역할만 하던 증류소였는데, 2017년에 빌리 워커가 인수하면서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었다. 워커는 글렌드로낙과 벤리악을 살려낸 캐스크 선별 쪽 감각으로 유명한 사람인데, 글렌알라키에서도 같은 일을 했다. 원래 이 증류소의 원액은 스페이사이드치고 묵직하고 진한 편이고, 거기에 셰리 캐스크를 적극 얹으면서 하이랜드 셰리 위스키에 가까운 캐릭터를 만들어낸다.
워커가 인수 후 가장 먼저 한 일 중 하나가 캐스크 스트렝스 시리즈다. 블렌드용 원액들을 희석 없이 그대로 보여주는 게 잠재력 증명에 가장 확실한 방법이었으니까. 10년 CS는 배치마다 캐스크 구성이 다르게 들어간다. PX 셰리, 올로로소, 버진 오크, 리오하 와인 캐스크 같은 것들을 그때그때 최적 조합으로 배팅한다. 배치 12는 칠필터링 없이, 인공 색소 없이, 원액 그대로의 도수로 병입된 구성. 마음에 드는 배치를 발견하면 여분까지 확보해두는 게 마니아들 사이의 암묵적인 룰이라고 한다.
배치 12의 자리
빌리 워커 체제 이후 전 라인업이 46% 이상 병입, 논칠필터드, 무색소 첨가 원칙을 지키고 있다.
| 제품 | 캐스크 | 도수 | 특징 |
|---|---|---|---|
| 10년 캐스크 스트렝스 | 배치마다 다름(PXㆍ올로로소ㆍ와인ㆍ버진오크 조합) | 57~59% | 오늘의 주인공 |
| 12년 | 셰리 + 버진 오크 | 46% | 입문용 가성비 |
| 15년 | PXㆍ올로로소ㆍ레드와인ㆍ버진 오크 배팅 | 46% | 별도 리뷰 있음 |
| 18년 | PX + 올로로소 셰리 | 46% | 합리적 장기 숙성 |
글렌알라키 10년 CS 테이스팅 노트
배치 12는 PX 셰리, 올로로소 셰리, 레드 와인, 버진 오크 캐스크를 조합해서 만들어졌다. 도수는 59.7%인데, 병에서 따를 때부터 뭔가 진한 녀석이라는 게 느껴진다. 색상부터가 진한 호박색이라 셰리 캐스크의 영향이 눈으로도 보인다.

향
다크 초콜릿이 지배적이다. 카카오 함량 80% 이상의 진한 초콜릿, 그런 느낌. 바로 뒤에 체리 콤포트 - 체리를 설탕에 졸인 것 같은 달콤하고 진한 과일 향이 따라오고, 토피와 시나몬 스파이스가 그 아래 깔려 있다. 말린 오렌지 껍질의 시트러스 뉘앙스도 슬그머니 얼굴을 내밀고, PX 셰리 캐스크에서 온 진한 건과일 향이 전체를 감싼다.
거의 60도에 가까운 도수답게 알코올의 존재감이 처음에는 좀 있는데, 1~2분 정도 글라스에서 쉬게 해주면 알코올이 빠지면서 그 밑에 숨어있던 향들이 더 선명하게 올라온다. 물을 한두 방울 넣으면 토피 향이 더 두드러지고, 약간의 꿀 뉘앙스도 나타난다.
맛
임팩트가 상당하다. 59.7%가 입 안에서 풍미를 폭발시키는데, 졸인 자두, 체리, 블랙커런트 같은 진한 과일 맛이 먼저 치고 들어온다. 바로 뒤에 모카와 호두의 고소한 풍미가 따라오고, 생강의 뜨끈한 열감이 입 안 전체로 퍼진다.
질감이 정말 두껍다. 오일리하다 못해 시럽에 가까운 쪽이다. 이 두꺼운 마우스필이 개인적으로 캐스크 스트렝스의 가장 큰 매력 중 하나라고 보는데, 일반 도수 위스키에서는 느끼기 힘든 촉감이다.
물을 조금 넣으면 과일 풍미가 좀 더 밝아지면서 초콜릿 무스 같은 크리미한 뉘앙스가 나타난다. 개인적으로는 니트로로 먼저 원액의 힘을 느끼고, 그 다음에 물을 타서 풀어진 풍미를 비교해보는 게 이 위스키를 가장 다양하게 즐기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피니시
피니시가 길다. 10년 숙성인데 이 정도면 대단하다. 에스프레소의 쌉쌀함이 먼저 남고, 다크 초콜릿의 진한 여운이 그 위를 덮는다. 따뜻한 스파이스 - 생강, 시나몬, 약간의 후추 - 가 목을 타고 내려가면서 건과일의 달콤함과 섞여 오래도록 머문다.
삼킨 후에도 입 안에 진한 셰리 프루트의 잔향이 수 분간 남아있는데, 이 긴 피니시 덕분에 한 잔을 마시는 데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린다. 좋은 의미에서. 한 모금 마시고, 피니시를 즐기고, 또 한 모금. 이렇게 마시다 보면 어느새 한 시간이 훌쩍 지나있다.
배치를 모으게 되는 이유
캐스크 스트렝스 위스키를 아직 안 마셔봤다면, 글렌알라키 10년 CS는 꽤 좋은 시작점이다. 도수가 높다고 해서 그냥 독한 위스키가 아니라, 그 도수 안에 풍미의 밀도가 빽빽하게 들어차 있는 느낌의 위스키다. 물로 자기 취향에 맞는 도수까지 조절하면서 마실 수 있다는 것도 캐스크 스트렝스의 장점이고.
배치 넘버에 따라 맛이 다르다는 것도 재미있는 포인트다. 같은 글렌알라키 10년 CS인데 배치 10과 배치 12의 맛이 상당히 다를 수 있다. 마음에 드는 배치를 발견하면 하나 더 사둘 것. 다음 배치에서 같은 맛이 나온다는 보장이 없으니까.
같은 CS 카테고리에서 비교하자면 아벨라워 아부나흐도 셰리 캐스크 스트렝스의 강자인데, 글렌알라키 쪽이 좀 더 다크 프루트 계열이 진하고 아벨라워는 스파이스가 더 앞에 서는 느낌이다. 스페이사이드의 배치/캐스크 스트렝스를 더 탐색하고 싶다면 더 글렌그란트 15년 배치 스트렝스도 재미있는 비교 대상인데, 글렌알라키가 셰리의 묵직한 힘이라면 글렌그란트는 같은 고도수에서도 가볍고 화사한 쪽으로 빠지는 스타일이다. 셰리 캐스크 위스키들을 관통하는 향과 맛의 공통점이 궁금하다면 셰리 캐스크 위스키 공통점 정리도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