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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리] 글렌드로낙 12년 리뷰(구형)

Spemer Spemer · 수정 · 3 mins read
[셰리] 글렌드로낙 12년 리뷰(구형)

셰리 캐스크 위스키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건 꽤 오래 전 일인데, 그 시작점이 바로 글렌드로낙이었다. 위스키를 막 마시기 시작하던 시절, 누군가 “셰리 캐스크를 제대로 알고 싶으면 글렌드로낙부터 가라”는 말을 해줬고, 실제로 12년 한 잔을 마셔보니 왜 그런 소리를 하는지 바로 이해가 됐다. 건과일이 잔뜩 들어간 크리스마스 푸딩을 한 입 베어 문 것 같은 느낌이랄까. 그때부터 셰리 계열 위스키를 본격적으로 파게 된 계기가 됐다.

글렌드로낙 증류소 소개

  • 설립: 1826년, 하이랜드 동쪽 애버딘셔
  • 캐스크: 올로로소 + PX 셰리 캐스크 숙성이 메인. 버번 캐스크 위주인 대부분의 증류소와 다르다
  • 소유: 현재 브라운포먼. 빌리 워커가 2008~2016년 운영하며 명성을 쌓았고, 이후 글렌알라키로 넘어갔다

동쪽 하이랜드는 과일 풍미가 풍부하고 바디감이 묵직한 위스키를 만드는 지역이라고 하는데, 셰리 캐스크와 이 지역 기후가 함께 글렌드로낙의 캐릭터를 만든다.

이 위스키의 탄생 배경

글렌드로낙 12년 오리지널은 이 증류소의 얼굴이다. PX와 올로로소 두 가지 셰리 캐스크를 함께 써서 이 집이 뭘 하는 곳인지 단번에 보여준다.

근데 “12년 오리지널”이라고 다 같은 게 아니다. 구형은 빌리 워커가 직접 캐스크를 골라 병입한 시절의 물건이고, 2019년 이후 브라운포먼 체제에서 현행 버전이 나왔다. 구형을 마셔본 사람들은 셰리의 깊이에서 미묘한 차이를 느끼는 경우가 많아서, 단종됐음에도 콜렉터들 사이에서 점점 더 찾는 병이 되어가고 있다.

글렌드로낙 대표 라인업

글렌드로낙의 정규 라인업은 전부 셰리 캐스크 숙성이라는 공통점이 있고, 올라갈수록 셰리의 깊이가 한 층씩 더해지는 구조다.

글렌드로낙 대표 라인업 비교

  • 12년 오리지널 - PX + 올로로소 셰리 캐스크, 43%
  • 15년 리바이벌 - PX + 올로로소, 46%. 라인업 중 가성비 최고
  • 18년 알라다이스 - 풀바디 셰리 몬스터
  • 21년 팔리아먼트 - 정규 라인업 최상위, 48%

글렌드로낙 12년 테이스팅 노트

이 집의 얼굴인 12년 오리지널을 뜯어보자.

글렌드로낙 12년 오리지널 싱글몰트 위스키

향 (Nose)

코를 가져다 대는 순간, 셰리의 단 향이 확 와닿는다. 맥캘란 12년 셰리 오크와 비교하면 맥캘란보다 더 향긋한 편인데, 밝은 과일 - 사과나 배 같은 - 이 먼저 올라오면서 산뜻한 인상을 준다. 건과일의 무거운 향보다 생과일에 가까운 밝은 달콤함이 앞에 서는 느낌이다. 좀 더 기다리면 토스티드 아몬드 향이 슬그머니 올라오고, 오렌지 필의 상큼한 시트러스 뉘앙스도 살짝 잡힌다. 전체적으로 겨울에 벽난로 앞에서 크리스마스 푸딩을 먹는 것 같은, 그런 따뜻하고 포근한 향이다.

맛 (Palate)

첫 모금에서 밝은 과실이 먼저 들어온다. 향에서 느꼈던 사과, 배 같은 밝은 과일 느낌이 그대로 맛으로 이어지는데, 스파이스는 맥캘란보다 약하게 들어온다. 질감이 꽤 오일리해서 입 안에서의 촉감이 좋고, 풀바디라고 해도 될 만한 무게감이 있다. 중반부터는 다크 프루트의 단맛이 조금씩 오크의 타닌으로 전환되면서 균형을 잡아가는 느낌이다.

43%라는 도수가 조금 아쉬울 수도 있는데, 사실 이 정도 도수에서 이 만큼의 풍미를 뽑아내는 것 자체가 대단한 거다. 물을 넣으면 오히려 셰리의 과일 느낌이 더 살아나기도 하니까, 니트로 한 잔 마시고 물 몇 방울 떨어뜨려서 한 잔 더 마시는 식으로 즐기는 걸 추천한다.

피니시 (Finish)

피니시에서 셰리의 잔향이 은은하게 퍼진다. 약간의 체리와 다크 초콜릿 뉘앙스가 입 안에 남으면서, 전체적으로 은근하게 퍼지는 느낌이 좋다. 삼킨 후에도 한참 동안 그 잔향이 머물러 있어서, 급하게 마시기가 아까워진다. 이 피니시를 천천히 음미하는 맛이 글렌드로낙 12년의 진짜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글렌드로낙 12년에 어울리는 안주

  • 다크 초콜릿 - 셰리 캐스크의 건포도, 캐러멜 노트가 카카오의 쓴맛과 만나면 풍미가 배가 된다
  • 숙성 치즈 (그뤼에르, 체다) - 고소하고 짭짤한 숙성 치즈가 글렌드로낙의 견과류, 건과일 향과 잘 맞는다

마치며

셰리 캐스크 위스키를 처음 접하는 사람에게 뭘 추천하냐고 묻는다면, 나는 항상 글렌드로낙 12년을 먼저 이야기한다. 가격도 비교적 합리적인 편이고, 셰리 캐스크가 위스키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교과서적으로 보여주는 병이기 때문이다.

사실 이 가격대에서 이 정도 셰리 퀄리티를 보여주는 위스키가 몇 개 없다. 맥캘란 12년 셰리 오크도 좋은 위스키지만, 가격 차이를 생각하면 글렌드로낙 12년이 가성비에서는 확실히 앞선다는 게 개인적인 생각이다. 비슷한 가격대에서 셰리 캐스크를 제대로 경험하고 싶다면 글렌파클라스 15년도 같이 비교해보면 좋다.

음용 팁을 하나 더 붙이자면, 이 위스키는 약간 따뜻한 환경에서 마시는 게 좋다. 차가운 곳에서 마시면 셰리의 달콤한 향이 잘 올라오지 않는데, 손으로 글라스를 감싸서 살짝 온도를 높여주면 숨어 있던 건과일 향이 훨씬 풍성하게 피어오른다. 가을이나 겨울, 약간 쌀쌀한 저녁에 한 잔 마시면 정말 분위기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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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 Spem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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