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커스 2023이냐 노아스 밀이냐. 한참 저울질하다 노아스 밀을 먼저 집었다. 그동안 마신 버번이 죄다 7~8만 원 선이었는데, 둘 다 15만 원 안팎이라 한 번에 둘을 데려오긴 부담이었다. 우성그린마트에서 159,000원. 온누리상품권 7% 할인을 끼우면 14만원대 중반까지 떨어진다. 퇴근길에 들고 와서 가방 내려놓자마자 뚜따했다.

병 옆면에 24-07 각인이 있다. 24년 배치인가 싶기도 한데 확실하진 않다. 찾아보니 이건 배치 번호와 연도 표기일 뿐 숙성 연수와는 상관없다고 한다. 노아스 밀은 지금 무연산(NAS)이고, 라벨에도 “충분히 익을 때까지 숙성”이라고만 적혀 있다. 출시 초기엔 15년 연산을 달았다는 얘기도 있는데, 지금 병에는 그 숫자가 없다.
첫 10만 원 대 버번
이 병을 고른 출발점은 단순했다. 잭 다니엘 싱글배럴 100 프루프를 두 병 가까이 비우고 나니, 그 결을 유지하면서 한 단계 위가 궁금해졌다. 잭싱배가 7.5만원 선이고 노아스 밀이 15만원대니까 거의 두 배다. 가격이 두 배인데 그 차이가 궁금해서 한 번은 확인하고 싶었다.
숫자만 늘어놓으면 도수부터 다르다. 잭싱배가 50%(100 proof)이고 노아스 밀은 57.15%(114.3 proof)다. 노아스 밀은 차게 거르지 않는 논칠필터드(NCF)에 자연색이다. 켄터키 바즈타운의 윌렛 증류소에서 나오는 스몰배치 버번이고, 매시빌은 옥수수 72 / 라이 13 / 몰트 보리 15라고 한다. 새로 만든 화이트오크 배럴을 가장 강하게 태운 채로 쓴다. 도수는 노아스 밀이 7도 넘게 높은데, 마셔보면 오히려 이쪽이 더 얌전하다.
향
따르자마자 바닐라와 바나나가 직격으로 온다. 돌려 말할 게 없다. 빙그레 단지 바나나 우유 향이랑 비슷한 느낌이었다. 거기에 견과류가 살짝 얹힌다. 적당한 스파이스가 같이 올라오는데 코를 찌르는 게 아니라 기분 좋은 선에서 멈춘다. 57%대 도수라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알콜 부즈가 얌전하다.
오크 향도 분명히 있긴 한데, 바닐라와 바나나가 워낙 세서 오크가 힘을 못 쓰는 느낌이다. 납 크릭 오래 졸인 느낌도 조금 났다. 솔직히 향만 맡고 있어도 돈값 한다 싶었다.

맛
달다. 그냥 단 게 아니라 거의 설탕물급이다. 한 모금 넘기면 바닐라와 바나나가 그대로 따라오고 캐러멜이 뒤에 깔린다. 스파이스는 있긴 한데 잠깐 올라왔다가 사라진다. 묵직하게 입을 채우면서도 거칠지 않다. 바디감만큼은 57%짜리답다.
단맛이 강해서 복잡한 맛을 기대하면 좀 심심할 수 있는데, 나는 이 직진하는 단맛 자체가 좋았다. 물을 안 타고 그대로 마셔도 알콜이 치는 구간이 거의 없다.
피니시
여기가 의외로 제일 좋았다. 엄청 부드럽고 따뜻하게 넘어간다. 피니시까지도 바닐라와 바나나가 따라오는데, 이 구간에서는 오크 비중이 조금 더 올라온다. 새 오크통에서 나는 기분 좋은 나무 향이 마지막에 자리를 잡는다. 목을 한참 동안 따뜻하게 코팅하는 느낌이 길게 간다.
잭싱배와 나란히 두면
결론부터. 잭싱배와 비슷한 결인데 훨씬 부드럽다. 단맛, 바닐라, 바나나로 가는 방향이 닮았다. 그런데 도수는 노아스 밀이 7도 넘게 높은데도 잭싱배가 더 거칠게 느껴졌다. 도수만 보면 반대 결과가 나와야 하는데 실제로는 노아스 밀 쪽이 매끈하다. 가격이 두 배라는 걸 감안해도 부드러움 하나만 놓고 보면 노아스 밀에 손이 갔다.
지금까지 버번이라고 하면 7~8만 원 선만 마셔봤다. 노아스 밀도 누군가에겐 엔트리겠지만, 나한테는 15만원대 버번이 처음이었다. 그 첫 경험치고 여러 면에서 만족스러웠다. 가격 장벽은 괜한 걱정이었다.

마치며
4.3점을 줬다. 정말 맛있고 가성비도 좋은데 딱 거기까지다. 단맛 하나로 끝까지 밀어붙이는 술이라 복잡한 맛을 기대하면 좀 아쉬울 수 있다. 그 점 때문에 별점을 더 못 채웠다.
이렇게 되니 같이 저울질하다 미뤄둔 부커스가 더 궁금해진다. 노아스 밀이 이 정도 부드러움이면, 도수를 한참 더 끌어올린 부커스는 어떻게 풀어내는지 보고 싶다. 다음 병은 그쪽으로 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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