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이글레어 10년을 열면서 러셀은 내일 따기로 했었다. 그 내일이 오늘이다. 같은 날 트레이더스에서 같이 집어온 두 병 중 나머지 한 병, 러셀 리저브 10년.
러셀 싱글배럴을 아주 만족스럽게 먹은 기억이 있어서 러셀이라는 이름 자체는 믿는 편이었다. 이건 그보다 한 단계 아래 등급인데, 도마 세트인 데다 가격이 59,800원으로 붙어 있길래 같이 계산대에 올렸다.

기대를 안 하고 열었다
알콜 도수가 45%다. 최근에 먹은 45% 언저리 버번들에게서 계속 밍밍한 인상을 받았던 게 걸렸다. 블랑톤도 그랬고, 바로 어제 연 이글레어도 그랬다.
거기에 예전에 먹었던 러싱배(러셀 싱글배럴)의 하위 버전이고, 가격도 6만 원이다. 그냥 평범한 술이겠거니 하고 뚜따했다.
그런데 잔에 따라놓고 향을 맡는 순간부터 예상이 어긋나기 시작했다.

달콤한 쪽으로 쏠린 향
달콤한 바닐라와 찐득한 메이플 시럽, 바나나 향. 전반적으로 달콤한 술이라는 인상이 매우 강하게 느껴진다. 토피와 버터스카치 캔디 같은 단맛도 약간 섞여 있다.
45%인데 타격감이 있다
다른 45도 버번들에 비해서 바디감과 타격감이 훨씬 만족스럽다. “이게 버번이지” 하는 느낌. 적당한 스파이스도 있어서 먹는 재미가 있다.
달콤한 바닐라와 메이플 시럽에 견과류와 오크향이 같이 온다. 여기서도 토피, 버터스카치 캔디 뉘앙스가 약간 스친다.
따뜻하게 남는 피니시
은은하고 따뜻하게 지속되는 달콤한 피니시가 기분을 좋게 만들어준다. 향에서 느껴졌던 것들이 그대로 피니시로 이어진다.
근데 그 이상의 특별한 점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래도 이 가격대에서는 충분히 만족스러운 술이다. 6만 원에서는 더 바라는 게 욕심일 정도로.
공식 홈페이지 노트에도 버터스카치, 메이플, 오크, 바닐라에 달콤한 피니시까지 그대로 적혀 있다. 내가 따로 느낀 건 바나나 정도다.
등급은 아래인데 내 점수는 위
러셀 리저브 라인에서는 보통 싱글배럴을 위로 친다. 그런데 내가 매긴 점수는 10년 쪽이 더 높다.
싱글배럴은 55%에 배럴 하나를 그대로 병입하고, 10년은 45%에 여러 배럴을 섞는다고 한다. 도수가 10도 차이 나고, 같은 날 트레이더스 가격표로도 89,400원과 59,800원이었다. 애초에 노리는 자리가 다른 술이라 우열이 뒤집혔다고 보진 않는다. 싱글배럴은 여전히 버번 한 병만 추천하라면 후보에 드는 술이고, 이건 그거랑 별개로 6만 원짜리치고 너무 잘 나왔다는 얘기다.
박스에 같이 들어 있는 미니 도마
견과류나 초콜렛 같은 간단한 안주를 올려둘 수 있는 작은 도마가 세트 구성으로 들어 있다. 매장 사은품이 아니라 박스 안에 같이 들어 있는 정식 구성이다. 꽤 예쁘게 나와서 손님이 왔을 때 자주 쓸 것 같다.

도마가 딸려 있는데도 트레이더스 가격이 데일리샷 최저가보다 싸다. 2026년 8월 11일 기준 데일리샷이 64,800원이니 5천 원이 더 저렴하다. 이 정도면 거의 안 사면 손해다.
이 가격대에 이만한 게 잘 없다
향도 좋고 맛도 좋다. 45%라 홀짝홀짝 먹기에 부담이 없으면서, 버번치고 낮은 도수인데도 바디감과 타격감을 적절히 챙겼다. 적당히 부드러워서 꿀떡꿀떡 잘 넘어가기도 한다. 기대를 안 하고 열었던 걸 생각하면 더 그렇다.
단점이라면 달콤함으로 시작해서 달콤함으로 끝난다는 점이다. 단조로운 술이고, 그냥 생각 없이 맛있게 먹기 좋은 술이다.
레어 브리드 58.4%를 매번 감당하기 부담스러운 날이 있는데, 홀짝홀짝 마시는 자리라면 러셀 10년이 그 자리를 대신해도 괜찮다. 병은 이미 비웠지만 언젠가 둘을 나란히 놓고 마셔보고 싶다. 고도수 버번만 계속 붙잡고 있을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점은 4.7점. 6만 원에 이 정도 나오는 술이 흔하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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