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렌디드 위스키를 좀 무시하던 시절이 있었다. 싱글 몰트만 고급이고 블렌디드는 그냥 대중주라는 편견이랄까. 근데 듀어스 더블더블 21년을 마시고 그 생각이 완전히 뒤집혔다. 21년이라는 숙성 연수도 대단하지만, 4단계 숙성이라는 독특한 공정을 거친 이 위스키는 블렌디드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를 보여준다. “블렌디드가 이 정도라고?” 라는 말이 입에서 절로 나왔다.
듀어스와 더블더블의 탄생 배경
- 듀어스: 1846년 설립. 핵심 증류소는 하이랜드 애버펠디 - 허니한 캐릭터가 블렌디드의 심장 역할
- 더블더블: 마스터 블렌더 스테파니 맥클라우드가 개발한 4단계 숙성 공정. 블렌딩 두 번, 숙성 두 번
4단계 공정을 풀어보면 이렇다. 몰트와 그레인을 따로 숙성 → 블렌딩 후 “마리잉”(원액끼리 어우러질 시간) → 추가 숙성 → 선별 캐스크에서 피니시. 보통 블렌디드가 원액 섞고 바로 병입하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접근인데, 결과물을 보면 그 의도가 꽤 잘 먹혔다고 생각한다.
듀어스 대표 라인업
듀어스의 라인업은 일반 라인과 더블더블 시리즈로 나뉜다.

- 듀어스 화이트 라벨 - 하이볼 베이스로 인기 있는 대중 라인
- 듀어스 12년 - 마리잉 숙성. 가격 대비 만족도 높음
- 듀어스 15년 / 18년 - 셰리 건과일 풍미가 깊어지는 숙성 라인
- 더블더블 21년 - 오늘의 주인공. 4단계 숙성 공정
- 더블더블 27년, 32년 - 동일 공정의 장기 숙성 프리미엄 라인
듀어스 더블더블 21년 테이스팅 노트
4단계 숙성이라는 공정이 실제로 잔에서 어떻게 느껴지는지 정리해본다.

향 (Nose)
글라스에 따르면 달큰한 셰리가 지배적으로 올라온다. 약간의 바닐라와 오크가 그 위에 얹히고, 농축된 건과일 - 잘 익은 블랙 체리 같은 - 향이 뒤따른다. 배와 사과가 둘 다 느껴지는데 배가 조금 더 강하고, 시트러스류의 상큼함이라기보다는 산미가 덜하고 당도가 있는 쪽의 과일향이다. 알코올 부즈가 아예 없는 건 아닌데 매우 약하다. 셰리 느낌이 강해서인지 약간의 황 노트와 혼동될법한 뉘앙스도 있는데, 부담스러운 정도는 전혀 아니다. 꿀까지는 아니고, 꿀물 정도의 은은한 달콤함. 전체적으로 21년이라는 시간이 만들어낸 깊이가 느껴지는 코.
맛 (Palate)
첫 모금에서 직관적인 셰리의 단 맛이 입 안을 채운다. 3초 정도 지나면 약하게 스파이스가 올라오는데, 공격적이지 않고 배경에 머무는 수준이다. 향에서 느꼈던 배, 체리 같은 과실의 느낌도 약간 느껴진다. 바디감은 중간급 정도이고, 탄닌감은 거의 없다. 전반적으로 스윗한 방향.
스무스하고 라운드한 질감이 이 위스키의 핵심인데, 모서리가 전혀 없다. 모든 풍미가 부드럽게 어우러져서 하나의 덩어리처럼 입 안에서 굴러간다. 블렌디드 위스키의 장점이 바로 이런 거라고 생각하는데, 싱글 몰트에서는 느끼기 어려운 이 매끄러운 일체감이 더블더블 21년에서는 극대화돼 있다. 솔직히 눈 감고 마시면 이게 블렌디드인지 싱글 몰트인지 구분하기 쉽지 않을 정도다.
피니시 (Finish)
피니시에서 약간의 기분 좋은 스모키함이 느껴진다. 그 안에 1% 정도의 피트감이 아주 미세하게 있고, 셰리의 단맛도 조금 남는다. 엄청나게 긴 피니시는 아닌데, 충분히 만족스러운 여운이다. 자극적이지 않으면서도 존재감이 확실한 피니시라서, 한 잔 마시고 나면 한동안 그 느낌이 남아있는 종류의 위스키.
듀어스 더블더블 21년에 어울리는 안주
- 숙성 체다 치즈 - 21년 숙성의 복합적인 풍미가 숙성 치즈의 깊은 고소함과 상호 보완
- 훈제 연어 카나페 - 4단계 숙성에서 오는 부드러운 바디감이 훈제 연어의 풍미와 잘 맞는다
마치며
듀어스 더블더블 21년은 블렌디드 위스키에 대한 생각을 바꿔놓은 병이다. 4단계 숙성이라는 공정에 들어간 시간과 노력이 잔에서 확실히 드러난다.
가격대는 싱글 몰트 21년들과 비교하면 오히려 합리적인 편이다. 물론 싸다고 할 수는 없지만, 21년 숙성에 이 정도 완성도라면 나쁘지 않은 가격이라고 생각한다. 같은 프리미엄 블렌디드라면 로얄살루트 21년도 비교해볼 만한데, 접근 방식이 꽤 다르다. 싱글 몰트만 마시던 사람이라면 한 번쯤 이쪽도 건드려볼 만하다.
음용 방식은 니트가 가장 좋다. 이 위스키의 크리미한 질감과 복합적인 풍미는 니트에서 가장 잘 드러나는데, 물을 몇 방울 넣으면 꿀의 달콤함이 좀 더 열리기도 한다. 다만 하이볼은 비추. 이 가격대에 이 숙성 연수의 위스키를 탄산수로 희석하기엔 너무 아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