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집 술 모임 자리에 기원 호랑이가 한 병 올라왔다. 친구가 PX에서 들고 온 거라고 했다. 바틀샵에서는 자주 봤지만 한 번도 직접 손에 든 적은 없는 병이었다. 한국에서 만든 싱글몰트를 10만 원 가까이 주고 살 이유가 있을까. 평소부터 갸웃했던 부분이라, 이번 자리를 빌려서 두 잔 정도 받아 마셨다.
호불호는 그날 자리에서도 갈렸다. 누구는 셰리가 너무 진하다고 했고, 누구는 도수가 적당해서 편하다고 했다. 내 입맛에는 호 쪽이었다. 다만 그 호감이 가격까지 정당화해주느냐는 또 다른 문제라, 이번 글은 그 둘을 분리해서 적어본다.

셰리와 와인 캐스크
도수는 46%, 올로로소 셰리에 레드 와인 캐스크를 섞었다고 한다. 무냉각여과ㆍ무착색이라 색은 자연색에 가깝다. 라벨에 나이 표기는 없다.
시중 가격은 10만 원 언저리, PX에서는 7만 원대까지 떨어진다. 친구가 가지고 온 병이 PX 버전이었다.
향, 맛, 피니시
잔은 모임에서 쓰던 일반 위스키 잔이었고, 따르자마자 마시진 않고 잠깐 두었다가 입에 댔다.
향
셰리와 오크가 먼저 잡힌다. 진한 편은 아닌데, 달콤하고 살짝 진득한 향이 향신료와 함께 올라온다. 셰리 캐스크 위스키 공통점에서 적었던 건과일ㆍ견과류 같은 전형적인 셰리 향보다는, 와인 캐스크가 섞여서 그런지 좀 더 가볍게 흔들리는 느낌이 있다. 코를 들이밀어도 자극은 별로 없다. 46%라서 그런 건지, 도수에 비해 부드러운 인상이다.
맛
입에 넣으면 달다. 버터스카치 캔디 같은 단맛이 먼저 와닿고, 그 뒤로 셰리 향이 따라온다. 약간 크리미한 질감이 있는데, 레드 베리 종류를 크림에 넣은 듯한 묘한 느낌이 잠깐 스친다. 처음 마셔보는 결이라 두 모금째에도 같은 인상이 나오는지 확인했는데, 비슷하게 잡혔다. 한국에서 만든 싱글몰트라고 미리 알고 마셔서 그런 건지, 아니면 진짜로 그런 결이 있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
바디감은 46%치고 적당히 묵직하다. 얇다는 느낌은 없고, 그렇다고 카발란 솔리스트 같은 고도수의 압박감이 있는 것도 아니다. 모임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천천히 마시기에 좋은 도수였다.
피니시
셰리가 피니시까지 그대로 이어진다. 끝에 향신료가 살짝 남는데, 매운 쪽보다는 따뜻한 쪽이다. 길지도 짧지도 않고, 다음 잔으로 넘어가기 전에 입을 정리해주는 정도의 여운이 있다. 떫은 느낌이나 거친 알코올은 거의 없었다.
같이 먹은 안주
그날 자리에 있던 안주는 육사시미였다. 위스키와 맞춰서 차린 자리가 아니라, 마침 그 자리에 있던 음식이 그것이었다는 의미다. 페어링 후기는 따로 적지 않는다.
그래서 10만 원이 답이 되었나
맛만 보면 호감이다. 처음 경험해본 결이라는 점, 도수가 부담스럽지 않다는 점, 셰리ㆍ와인 캐스크의 단맛이 분명하다는 점에서 두 잔을 다 비울 동안 지루하지 않았다. 내 기준으로 4.2점 정도는 줄 만하다.
다만 시중가 10만 원은 망설여진다. 비슷한 가격대에서 글렌드로낙 12년을 살 수도 있고, 조금 더 보태면 아란 셰리 캐스크 스트렝스와 아부나흐 비교에서 다뤘던 병들도 손에 들어온다. 셰리 결이 더 진한 쪽이 좋다면 그쪽이 만족스러울 거고, “한국에서 만든 싱글몰트를 마셔본다”는 경험에 의미를 둔다면 호랑이가 답이 된다.
PX 7만 원대라면 한 병 사둘 만하다고 본다. 시중 10만 원에 직접 사진 않을 것 같지만, 누가 또 들고 오면 받아 마실 생각은 있다. 한 번 더 마시면 첫 모금의 그 묘한 베리 크림 인상이 다시 나올지 확인해보고 싶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