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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 시음] 아란 셰리 캐스크 vs 아벨라워 아부나흐 84

위린이 위린이 4 mins read
[비교 시음] 아란 셰리 캐스크 vs 아벨라워 아부나흐 84

오픈한 지 두 달쯤 된 아란 셰리 캐스크아벨라워 아부나흐 배치 84가 비슷한 잔량으로 남아 있길래, 두 잔을 나란히 놓고 한 모금씩 왕복했다. 둘 다 고도수 셰리 캐스크라서 결이 비슷할 줄 알고 시작한 자리인데, 막상 같이 마시니 비교가 좀 민망할 정도로 차이가 벌어졌다.

가격대도 같이 적어둔다. 아란은 트레이더스에서 10만 원 언더, 아부나흐 84는 마포글로벌마트에서 15만 원 언더. 구매가 기준으로 5만 원 차이다.

왜 이 두 병인가

고도수 셰리 위스키를 떠올리면 보통 글렌알라키 10년 CS, 아부나흐, 그리고 한 발짝 떨어진 자리에 아란 셰리 캐스크 정도가 후보로 떠오른다. 셋 다 올로로소 셰리 캐스크에 캐스크 스트렝스를 끼얹은 구조라 가격대만 다를 뿐 결은 비슷할 거라고 막연히 생각했다.

캐스크 사이즈(혹스헤드 vs 버트)와 도수에서 이미 갈리지만, 같은 “고도수 풀 매추레이션 셰리”라는 큰 카테고리 안이라 비교가 성립한다고 봤다.

아란 셰리 캐스크 vs 아부나흐 84 비교표

항목 아란 셰리 캐스크 아부나흐 배치 84
캐스크 퍼스트 필 올로로소 혹스헤드 퍼스트 필 올로로소 버트
도수 55.8% 61.2%
향 방향 가벼운 셰리, 한라봉, 미세한 황 시트러스, 가볍고 달달한 오렌지
맛 방향 달달함 일변도, 깊이는 부족 스파이스 + 점진적 단맛, 두툼한 바디
피니시 향의 결 유지, 약한 다크초콜릿 묵직, 진한 오크, 복합적
바디 가볍고 단정 묵직하고 점성 있음

도수 차이는 5.4%P. 숫자로는 그저 그런 차이로 보이는데, 입에서 받는 무게에는 그보다 더 큰 격차가 있었다.

비교 시음 - 향

아란 셰리 캐스크와 아벨라워 아부나흐 배치 84 비교 시음

먼저 아란부터. 셰리 향이 무겁게 깔리지 않는다. 가볍게 떠 있는 느낌이고, 그 위로 한라봉 같은 시트러스가 한 겹 올라온다. 오렌지보다는 한라봉 쪽이 더 맞는 표현이다. 동시에 미세한 황 노트가 살짝 비치는데, 이게 위에서 적은 “결이 살짝 어긋난다”의 출발점이 됐다.

잔을 바꿔서 아부나흐. 향에서부터 분위기가 다르다. 시트러스 계열인 건 같은데, 이쪽은 가볍고 달달한 오렌지 향이 정면에 나선다. 황 노트나 어두운 셰리의 묵직함이 향에서는 없다. 도수가 5.4%P 더 높은 술인데 향이 오히려 더 깔끔하게 열린다는 점이 의외였다.

향만 놓고 보면 아란 쪽이 한라봉의 결, 아부나흐 쪽이 오렌지의 결이라는 식으로 갈렸다. 같은 카테고리 안인데 결이 이렇게 다른 게 첫 번째 놀라움이었다.

비교 시음 - 맛

여기서부터 격차가 보인다.

아란을 머금으면 달달한 셰리 맛이 먼저 자리를 잡는다. 그런데 그게 끝이다. 입 안에서 굴려도 추가로 펼쳐지는 레이어가 거의 없다. 단맛 하나로 가는 위스키라고 정리해도 크게 틀리지 않는다. 향에서 비쳤던 황 노트가 미세하게 따라오는데, 이게 단맛의 결을 살짝 어색하게 만든다.

아부나흐로 넘어가면 입 안의 정보량이 단번에 늘어난다. 스파이스가 먼저 톡 쏘고 들어오고, 그 뒤로 단맛이 점점 강해진다. 한 번에 단맛을 쏟아붓는 게 아니라, 입 안에 머금는 시간에 비례해서 단맛이 깊어지는 구조다. 점성 있는 묵직한 바디가 혀를 감싸면서 진행되니까 한 모금이 끝났다는 감각이 늦게 온다.

같이 마시면 “단맛만 있는 아란 vs 단맛이 빌드되는 아부나흐” 구도가 꽤 명확하게 잡힌다. 이 부분에서 가격 차이를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됐다.

비교 시음 - 피니시

피니시는 갈라지는 폭이 가장 크다.

아란은 피니시도 향의 연장선이다. 한라봉의 결이 길게 끌리고, 끝자락에서 약간의 다크 초콜릿이 묻어 나온다. 가볍게 마무리되는 쪽이라 부담은 없는데, 향-맛-피니시가 거의 같은 표정으로 끝까지 간다. 입체감이 약한 인상이다.

아부나흐 피니시는 향과 거의 다른 술 같다. 향에서 가벼운 오렌지였던 게 피니시에서는 묵직한 오크가 정면에 깔린다. 진한 우드와 베이킹 스파이스가 길게 남고, 그 위로 복합적인 향이 한 겹 더 끌린다. 한 모금의 시작-중간-끝에 각각 다른 얼굴이 붙어 있다는 표현이 맞을 듯하다. 셰리 캐스크 위스키에서 자주 보이는 진한 오크 여운이 가장 정직하게 나오는 케이스다.

같은 자리에서 마시면 피니시의 길이와 두께가 거의 두 배 가까이 벌어지는 인상을 받았다.

가격을 빼고 봐도, 가격을 넣고 봐도

복합성, 바디감, 피니시 - 세 축 모두에서 아부나흐가 앞선다. 5.4%P 더 높은 도수가 어렵게 느껴질 수 있는데, 그 도수가 그대로 바디감으로 전환되니까 부담보다 만족이 더 컸다.

가격 차이는 5만 원. 적은 돈은 아닌데, 한 잔에서 받는 정보량과 여운의 격차를 같이 놓고 보면 5만 원이 아깝다는 생각은 안 들었다. 차라리 단순한 결로 가는 셰리 CS를 살 거면 한 단계 아래 가격대인 글렌드로낙 12년이 더 정돈된 셰리를 더 싸게 보여준다는 인상이다. 아란 셰리 캐스크는 그 사이 자리가 좀 애매하게 느껴졌다.

황 노트가 살짝 비치는 게 아란 쪽 인상을 깎는 부분이긴 한데, 이건 개인 취향이 갈리는 노트라 누군가에게는 오히려 매력일 수도 있겠다. 비슷한 결의 황을 느꼈던 글렌파클라스 15년 쪽이 차라리 더 정리된 결로 받아낸다는 느낌이었다. 셰리 캐스크 위스키들이 공유하는 향과 맛 패턴은 셰리 캐스크 위스키 공통점 정리에 따로 모아뒀다.

정리

같은 고도수 셰리 카테고리라고 묶기엔 결이 너무 달랐다. 아부나흐 84는 한 잔에 들어 있는 정보량과 피니시의 두께가 5만 원 차이를 정당화하는 쪽이고, 아란 셰리 캐스크는 단정한 단맛 한 결로 흘러가는 쪽이다. 비교 시음 결론은 아부나흐 압승. 다른 결의 셰리 CS를 같은 자리에서 마셔보고 싶다면 배치 82와 나란히 놓는 쪽이 차라리 결이 맞는 비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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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 위린이

위스키 테이스팅, 자동차, 투자ㆍ부동산, 맛집, 개발을 기록하는 위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