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만들어본 칵테일 중에서는 처음이다. 위스키 잔만 잡다가 셰이커도 없이 시작해서, 잔에 얼음 채우고 두 병을 그대로 부어 스푼으로 한 번 휘저은 게 전부였다. 레시피는 정말 단순했고, 만드는 데 1분이 안 걸렸다.
1:1로 시작한 이유
찾아보니 IBA 공식 레시피가 꼬냑 35ml + 아마레또 35ml, 정확히 1:1이라고 한다. 1987년에 IBA 등재된 비교적 오래된 공식 비율이고, 만드는 법도 “올드 패션드 글라스에 얼음 채우고 둘 다 부어서 스터” 한 줄짜리다. 공식이 이렇게 단순하면 일단 그대로 따라 해보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쓴 재료는 두 가지.
- 꼬냑: 까뮤 VSOP. 40% ABV, 보더리 크뤼 중심
- 아마레또: 디사론노 오리지널. 28% ABV, 이탈리아 사로노
디사론노는 이름만 자주 듣다가 이번에 처음 따봤다. 살구씨 오일과 허브로 만든다는데 아몬드 향이 강하다. 실제로는 아몬드를 안 쓴다는 게 좀 의외였다. 병 디자인 때문에 바에서 봤을 때부터 한 번 사보고 싶었던 술이다.

향에서 이미 단맛이 보인다
잔에 코를 가까이 댔을 때 가장 먼저 잡힌 게 아몬드였다. 그 뒤로 허브, 향신료, 풀 비슷한 향이 깔리고, 바닥 어딘가에 과실주 같은 결이 한 겹 있다. 이 과실주 느낌은 까뮤 쪽에서 오는 듯하다.
향에서부터 “이건 단 칵테일이다”라는 신호가 너무 명확했다. 위스키 시음할 때처럼 코로 결을 분해해 보려고 했는데, 아몬드가 너무 두껍게 깔려서 그 아래를 들춰보기가 어려웠다. 까뮤 VSOP 단독으로 마셨을 때 잡혔던 화사한 과실향은 거의 안 보였다.
한 모금 마시고 나서
너무 달다. 이게 첫 문장이다.
아메리카노에 시럽 타먹는 걸 좋아하지 않는데, 그 비슷한 결의 단맛이 입 안에 깔린다. 아몬드 풍미가 지배적으로 자리를 잡고, 살짝 흑설탕 시럽 같은 뉘앙스가 따라온다. 까뮤 VSOP의 은은한 바닐라와 과실향은 거의 묻혀서, 따로 단독으로 마셨을 때의 인상을 떠올리려고 해도 잘 안 잡혔다.
피니시까지 아몬드가 다 덮어버린다. 부드럽고 달달한 건 맞는데, 술 한 잔이라기보다 디저트 한 잔에 가깝다. 식사 자리에서 가볍게 한 잔 하기보다, 식후에 단 거 대신 마시는 쪽이 어울릴 듯하다.
디사론노 28% + 까뮤 40%를 1:1로 섞으면 도수만 보면 비슷한데, 풍미의 무게에서는 디사론노가 완전히 우위다. 아몬드 향이 워낙 진해서 꼬냑의 결을 다 덮어버린다. 1:1이 균형이 맞는 비율이라고 IBA가 정해놨지만, 적어도 까뮤 VSOP + 디사론노 조합에서는 균형이 한쪽으로 기운다.
다음에는 비율을 바꿔본다
이 시점에서 IBA 공식이 절대 기준은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용되는 꼬냑과 아마레또 브랜드에 따라 풍미 비중이 달라질 수 있고, 디사론노처럼 향이 진한 아마레또를 쓰면 1:1은 너무 한쪽으로 쏠리는 결과가 나오는 듯하다.
다음번엔 꼬냑 : 디사론노 = 3:1 정도로 가볼 생각이다. 까뮤의 과실향과 바닐라가 살아남을 정도로는 꼬냑 비중을 키워야 균형이 맞을 것 같다. 2:1로 시작해서 입에 맞게 조정해도 될 듯한데, 일단 3:1까지 디사론노를 줄여보고 거기서 거꾸로 올라가는 쪽이 차이를 더 잘 잡을 것 같다.
평점은 3.2. 1:1 비율 기준 점수이고, 비율을 조정하면 더 올라갈 여지가 있다고 본다.
디사론노 + 다른 술 라인업
디사론노 한 병을 사두니 비슷한 구조의 칵테일이 줄줄이 따라온다. 같은 패밀리로 묶이는 조합이 세 가지다.
- 꼬냑 + 디사론노 = 프렌치 커넥션(오늘 마신 거)
- 스카치 위스키 + 디사론노 = 갓파더
- 버번 + 디사론노 = 더 보스
전부 디사론노 한 병으로 굴릴 수 있다는 게 매력이다. 셰이커도, 다른 리큐어도 필요 없다. 얼음 한 잔에 두 술을 부으면 끝이다.
다음 도전은 두 가지로 잡았다.
라가불린 16년으로 갓파더. 갓파더는 보통 스카치를 쓰는데, 피트 위스키와도 잘 어울린다는 평이 있다고 한다. 라가불린의 진한 피트 스모크와 디사론노의 단 아몬드가 부딪치는 그림인데, 머릿속에서 그려봤을 때 의외로 잘 맞을 것 같은 인상이다. 단맛이 피트의 거친 결을 받아주는 구도라면 꽤 흥미로울 듯하다.
버팔로 트레이스로 더 보스. 버번 특유의 바닐라, 옥수수 단맛과 디사론노의 아몬드/허브 향이 어떻게 섞일지 궁금하다. 버번 자체가 단맛이 있는 술이라 디사론노와 부딪치면 너무 달아질 위험이 있어 보이는데, 그래서 더 비율 실험이 필요한 조합일 것 같다.

디사론노는 GS25 편의점에서 구매했다. 700ml 기준 가격은 39,900원.
다음 잔으로
까뮤 VSOP 단독의 화사한 과실향이 1:1에서는 다 묻혔다. 하우스ㆍ등급 따라 칵테일 결과도 꽤 갈릴 듯하다. 꼬냑 카테고리 자체는 브랜디ㆍ꼬냑 등급 정리에 정리해뒀다.
3:1 비율로 다시 마시고, 그 다음은 갓파더로 넘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