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만 원대에서 셰리ㆍ버번ㆍ포트가 같이 들어간 싱글몰트를 찾기는 어렵다. 그게 들어가서 억지로 안 섞여 있는 병은 더 어렵다. 벤리악 12년 더 트웰브(The Twelve)는 그 어려운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구성이다. 마시자마자 가격을 잠깐 잊게 만든다.
한 줄 평
가성비 셰리 데일리 자리에 가장 자연스럽게 앉을 후보다.
마셔본 인상

향
건과일이 먼저 진하게 올라온다. 끈적이는 셰리의 달큰함이 베이스에 깔리고, 메이플 시럽 같은 단맛 아래로 오크의 묵직한 향이 받친다. 미세한 스파이스가 단조로움을 잡아준다. 포트 캐스크의 영향인지 살짝 베리 같은 과일 향이 얼핏 비친다. 시간을 두고 천천히 맡으면 레이어가 하나씩 열리는 타입이다.
맛
달다. 입에 들어오자마자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가 그거다. 셰리의 단맛이 확 치고 들어오고, 뒤로 사과ㆍ서양 배의 과일 느낌이 이어진다. 오렌지 껍질의 시트러스가 살짝 스친다. 중반에 버번 캐스크의 바닐라와 오크 터치가 들어와 셰리의 단맛을 잡아주는데, 이 균형이 꽤 잘 맞는다고 느꼈다. 46%답게 알코올 자극은 거의 없고, 입 안에서의 질감이 부드럽다.
피니시
헤이즐넛의 고소함이 먼저 올라오고 모카 커피의 쌉싸름함이 뒤를 따른다. 포트 캐스크의 베리 단맛이 여운으로 길게 남는다. 길이는 미디엄 정도. 단맛과 견과류 고소함이 입 안에 꽤 오래 머문다.
쓰리 캐스크가 만든 인상
쓰리 캐스크라는 표현은 셰리ㆍ버번ㆍ포트 세 캐스크에 동시에 매추레이션해서 블렌딩한다는 뜻이다. 위에서 잡았던 노트를 따로 떼어서 보면 어디서 어떤 게 왔는지 대충 짐작이 된다. 셰리에서 건과일과 단맛, 버번에서 바닐라와 오크 스파이스, 포트에서 베리류의 과일감. 이것들이 따로따로 튀지 않고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되는 게 이 병의 핵심이다.
마스터 블렌더 레이첼 배리의 손이 닿은 결과인 듯하다. 벤리악은 1898년에 세워져 2년 만에 닫고 65년을 잠들어 있었다고 한다. 2004년 빌리 워커(글렌드로낙을 되살린 인물)가 인수해 다시 가동했고, 이후 브라운포먼이 인수하면서 지금의 라인업이 정리됐다. 46% ABV, 논칠필터링, 무색소.
더 트웰브가 라인업 어디에 있나
벤리악은 논피티드 라인과 스모키 라인을 동시에 가져가는 좀 특이한 증류소다. 더 오리지널 텐(10년)이 입문 자리에 있고, 더 트웰브가 그 위에서 쓰리 캐스크의 복합성이 본격적으로 열리는 지점이다. 더 스모키 텐과 스모키 트웰브가 피티드 스페이사이드라는 흔치 않은 자리를 채우고, 21년ㆍ25년ㆍ30년이 장기 숙성 프리미엄 라인을 맡는다. 더 트웰브는 라인업 안에서 “복합성을 가장 가성비 있게 보여주는 자리”에 정확히 들어가 있다.
같은 7만 원으로 살 수 있는 셰리 위스키들
같은 가격대 셰리 캐스크 위스키와 비교했을 때 더 트웰브의 자리가 어디인지가 결국 구매 판단에 가장 직결된다. 글렌파클라스 15년은 정통 셰리 한 우물을 깊게 파는 스타일이고, 벤리악은 쓰리 캐스크로 여러 방향의 풍미를 한 병에 담는 쪽이다. 정통파 셰리를 원하면 글렌파클라스, 다양성을 원하면 벤리악이라는 식의 갈림이 만들어진다. 맥캘란 12년 셰리 오크는 가격이 거의 두 배라 사실상 다른 라운드의 비교다.
셰리 계열을 좋아하는데 매번 비싼 병만 사기 부담스러운 자리에 더 트웰브를 데일리로 두는 게, 내 입맛에선 가장 합리적인 사용 방법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