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렌알라키 15년 첫 리뷰를 쓴 지 한 달 정도 됐다. 뚜따 직후에도 충분히 맛있었는데, 한 달이 지나니까 이게 또 다른 위스키가 됐다. 알코올 부즈가 빠진 자리를 셰리와 꿀이 채워버린 느낌이랄까.
뚜따 1개월, 뭐가 달라졌나
개봉 직후의 글렌알라키 15년은 46%임에도 약간의 알코올 자극이 있었다. 한 달이 지난 지금, 그 부즈가 거의 다 날아갔다. 코에 대면 알코올이 먼저 치고 올라오던 게 사라지고, 그 자리에 셰리 향이 훨씬 또렷하게 전면에 나선다.
전체적으로 훨씬 부드러워졌다. 뚜따 직후에는 버터스카치와 토피가 메인이었는데, 지금은 그 뒤에 숨어있던 향들이 하나씩 고개를 내미는 중이다.

이 간장색이 참 마음에 든다. 무색소인데 이 정도 색이 나온다는 건 셰리 캐스크가 제대로 일한 거다.
테이스팅 노트 - 1개월 산화 후
향 (Nose)
가장 큰 변화가 여기서 나타났다. 알코올 부즈가 빠진 자리를 셰리 향이 확실하게 차지했다. PX 셰리의 달콤한 건과일 향이 이전보다 훨씬 진하게 올라오고, 거기에 시트러스 계열의 향이 새로 추가된 느낌이다. 뚜따 직후에는 없었던 뉘앙스인데, 오렌지 껍질 같은 상큼한 향이 셰리의 달콤함 사이사이로 비집고 나온다.
헤이즐넛 향도 확실히 도드라졌다. 처음에는 바닐라와 오크에 묻혀있었는데, 산화가 진행되면서 견과류 캐릭터가 앞으로 나온 거다. 셰리 특유의 약간 눅눅한 향 - 오래된 셰리 보데가 창고 같은 그 느낌도 은근히 깔려 있다.
맛 (Palate)
꿀. 꿀 향이 미친 듯이 도드라진다. 뚜따 직후에도 토피와 꿀의 달콤함이 있었지만, 지금은 아카시아 꿀을 한 스푼 떠먹은 것 같은 수준이다. 진짜 맛있으라고 MSG를 쳐놓은 게 아닌가 싶을 정도. 내 생각엔 알코올 자극이 빠지면서 단맛 쪽 풍미가 더 선명하게 드러난 것 같다.
다크 체리의 과일맛도 이전보다 선명해졌다. 아벨라워 아부나흐에서 느꼈던 체리 콤포트와는 좀 다른, 좀 더 생과일에 가까운 체리. 헤이즐넛의 고소함이 이 달콤함 위에 얹어지면서 누텔라 같은 조합이 된다.
마우스필은 확실히 더 부드러워졌다. 실키하다 못해 거의 물처럼 넘어간다는 건 아니고, 크리미한 질감이 한 단계 더 올라간 느낌이다.
피니시 (Finish)
피니시에서 흑설탕의 달콤함이 더 짙어졌다. 뚜따 직후에는 바닐라와 오크의 잔향이 메인이었는데, 지금은 흑설탕 특유의 묵직한 단맛이 목을 타고 내려가면서 오래 머문다. 따뜻하고 포근한 피니시는 여전한데, 달콤함의 톤이 바뀐 거다. 바닐라 -> 흑설탕으로.
셰리의 눅눅한 잔향도 피니시 끝자락에 살짝 남는다.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부분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이 눅눅함이 깊이감을 더해준다고 본다.
빌리 워커는 신이다
10년 CS로 캐스크 스트렝스의 저력을 보여주고, 15년으로 밸런스의 정수를 보여주고, 시간이 지나면 또 다른 매력이 나오도록 캐스크를 설계하는 능력. 글렌드로낙과 벤리악을 되살린 이력도 있지만, 글렌알라키에서의 행보는 그 이상이다. 산화가 진행되면서 네 가지 캐스크의 캐릭터가 더 또렷하게 분리되어 느껴지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맛있어지는 위스키를 설계할 수 있다는 건 대단한 거다.
글렌알라키 15년에 어울리는 안주
이전 리뷰에서 숙성 체다와 다크 초콜릿을 추천했는데, 한 달 산화 후에는 좀 다른 페어링이 더 맞는다.
- 헤이즐넛 초콜릿 - 헤이즐넛 향이 도드라진 지금, 견과류 초콜릿과의 시너지가 확실하다
- 건크랜베리 - 셰리 건과일 향과 시트러스 뉘앙스가 강해진 상태라 새콤달콤함이 잘 어울린다
마치며
뚜따 직후의 글렌알라키 15년이 “편안한 위스키”였다면, 한 달 후의 15년은 “맛있는 위스키”다. 부즈가 빠지면서 풍미의 해상도가 올라간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흐릿하게 보이던 것들이 선명해진다. 이 가격대 셰리 위스키 중에서 뚜따 후 변화까지 즐길 수 있는 병은 많지 않다고 본다.
그리고 46도라는 숫자는 정말 만족스러운, 예쁜 숫자라고 생각한다. 글렌알라키의 전 라인업이 46% 이상인 게 괜히 그런 게 아니다. 한번 46도에 적응되고 나면 40도짜리 위스키는 밍밍하게 느껴진다. 풍미의 밀도 자체가 다르다.
한 병 사서 바로 다 마시지 말고, 한 달 정도는 천천히 즐겨볼 것을 추천한다. 시간이 만들어주는 맛이 분명히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