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 크릭 9년을 따로 마셨을 때는 피니시의 땅콩이 제일 오래 남았다. 그런데 러셀 리저브 싱글배럴 옆에 놓고 번갈아 마시니 그 땅콩보다 질감 차이가 먼저 보였다. 한쪽은 크리미하고 둥글고, 한쪽은 처음부터 입 안을 꽉 누르는 쪽이다.
둘 다 50%를 넘는 버번이라 기본 타격감은 충분하다. 납 크릭은 6만 원대 후반에 샀고, 러셀 싱글배럴은 9만 원대 후반에 샀다. 러셀 쪽이 오픈한 지 한 달 정도 더 됐다는 변수는 있다. 그래도 두 병의 방향이 꽤 달라서, 같은 날 같은 자리에서 마셔보는 재미가 있었다.

먼저 갈리는 지점
납 크릭은 짐 빔 계열에서 기대하는 고소함이 꽤 앞에 있다. 다만 내가 예상했던 “땅콩향 폭발”은 향과 맛보다는 마신 뒤에 훨씬 강하게 왔다. 코에서는 오일리함, 견과류, 피넛버터, 오크를 지나 살짝 마른 나무 향까지 간다. 땅콩 하나로 좁히기보다는 견과류 전체의 인상에 가깝다.
러싱배는 처음부터 더 무겁다. 캐러멜, 오크, 바닐라, 바나나가 같이 올라오고, 뒤쪽에는 카카오닙스 같은 다크초콜릿 느낌도 있다. 납 크릭이 고소하고 크리미한 쪽이라면, 러싱배는 더 진하고 어두운 단맛 쪽이다.
납 크릭 9년
향 (Nose)
처음에는 약간의 알코올 부즈가 있다. 50% 버번이니 이상한 건 아닌데, 코에서는 생각보다 먼저 친다. 그 뒤로 오일리한 느낌, 견과류, 피넛버터가 이어진다. 오크도 있는데 단순한 바닐라 오크가 아니라 나무 자체의 냄새가 조금 더 나온다. 땅콩이라고 콕 집어 말하기엔 향에서는 넓은 견과류 쪽이다.
맛 (Palate)
맛에서는 향에서 느낀 알코올 자극이 거의 사라진다. 이게 납 크릭에서 제일 의외였다. 질감이 크리미하고, 러싱배에 비하면 훨씬 부드럽다. 스파이스도 덜하고 단맛이 편하게 깔린다. 강하게 밀어붙이는 버번이라기보다는 둥글게 입 안을 채우는 쪽에 가깝다.
피니시 (Finish)
피니시에서 땅콩이 크게 나온다. 향에서는 “견과류”였는데, 삼킨 뒤에는 그냥 땅콩이다. 납 크릭을 궁금하게 만든 포인트가 여기서 제대로 나온다. 길게 이어지는 화려한 피니시는 아닌데, 남는 인상이 꽤 선명하다.
러싱배
향 (Nose)
러싱배는 코에 대자마자 묵직하다. 캐러멜과 오크가 먼저 있고, 바닐라와 바나나가 뒤따라온다. 다크초콜릿도 있는데 달콤한 초콜릿이라기보다는 카카오닙스 쪽의 살짝 쌉싸름한 느낌이다. 납 크릭보다 알코올이 더 높지만, 향에서는 무게감이 먼저 와서 부즈가 거슬리지는 않았다.
맛 (Palate)
입에 들어가자마자 만족스러운 질감이 있다. 55%에서 오는 타격감이 바로 느껴지고, 바디감과 탄닌감이 먼저 잡힌다. 그 뒤에 스파이스가 올라온다. 스파이스가 지나간 다음에 다크초콜릿 같은 달달함이 남는데, 이 순서가 좋았다. 단맛으로 시작해서 스파이스로 끝나는 게 아니라, 구조가 먼저 오고 단맛이 나중에 오는 느낌이다.
피니시 (Finish)
피니시는 오크가 길게 남는다. 거기에 사과 같은 과실감이 살짝 있고, 아주 약하게 절간냄새 같은 것도 느껴졌다. 이 표현이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무와 향 냄새가 겹친 듯한 잔향이다. 납 크릭의 피니시가 땅콩 하나로 찍히는 편이라면, 러싱배는 오크와 과실, 묘한 향 냄새가 섞여서 간다.
블라인드로 놓으면
예전에 친구들과 러싱배와 와일드 터키 레어 브리드를 블라인드로 마신 적이 있다. 그때는 구분이 쉽지 않았다. 둘 다 진한 버번 느낌이 있고, 도수와 질감도 비슷한 방향이라 헷갈렸다.
근데 러싱배와 납 크릭은 더 쉽게 갈릴 것 같다. 납 크릭은 피니시의 땅콩이 너무 개성 있고, 러싱배는 오크, 캐러멜, 스파이스, 다크초콜릿 쪽으로 더 묵직하게 간다.
가격까지 넣어보면 납 크릭은 꽤 설득력이 있다. 6만 원대 후반에 이 정도 도수와 질감이면 불만이 적다. 러싱배는 9만 원대 후반이라 더 비싼데, 첫 모금의 질감과 55%의 타격감에서 납득이 된다. 개인적으로 오늘 한 잔만 고르라면 러싱배 쪽이다. 다만 한 병을 계속 편하게 비우는 쪽은 납 크릭일 수도 있다.
둘 다 50%를 넘다 보니, 40%대 버번에서 가끔 느껴지는 밍밍함은 없다. 납 크릭은 피니시의 땅콩 때문에 기억에 남고, 러싱배는 입에 들어오는 순간의 질감 때문에 기억에 남는다. 다음에는 와일드 터키 레어 브리드까지 세 잔으로 놓고 다시 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