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성그린마트에서 글렌모렌지 디 인피니타 18년을 집어 왔다. 같은 증류소 16년 더 넥타에 반한 뒤로 윗급이 어디까지 가는지 궁금해서. 온누리 상품권 7% 할인 먹여서 18만 원 대에 샀고, 집 오자마자 박스 뜯고 바로 한 잔 따랐다.
후회 없다. 다시 살 의향 90% 이상.
익스트리멀리 레어에서 디 인피니타로
이 병, 2024년에 이름이 바뀌었다. 예전 “Extremely Rare 18 Years Old”가 지금 디 인피니타다. 박스도 코발트블루로 싹 갈아엎었고, 내용물은 그대로라고 한다. 위린이 입장에선 그냥 “글렌모렌지 18년”으로 불러도 된다.
테이스팅 노트
코피타에 미리 따라두고, 10분 정도 뒤에 마셨다.
향 (Nose)
방금 딴 병인데도 알콜 부즈가 하나도 없다. 이게 제일 놀라웠다. 43% 도수라 그런 것도 있겠지만, 이 정도로 매끈하게 열리는 건 예상 밖이었다.
시원한 오렌지와 시트러스의 단 향이 먼저 올라온다. 뒤로 꿀 탄 물 같은 가벼운 단내가 깔리고, 미세한 스모크가 스쳐 지나간다. 단 향이 강조된 벤로막 10년의 고급 버전 느낌도 약간 있다. 벤로막이 거칠고 젊은 스모크 단맛이라면, 이쪽은 같은 뼈대를 몇 단계 곱게 다듬어놓은 쪽이다.
맛 (Palate)
달콤한 글레이즈드 도넛, 딱 이 맛이다. 설탕 글레이즈 입힌 도넛의 그 기름기랑 밀가루 느낌이 그대로 있다.
뒤이어 약간의 견과류가 붙고, 몰티함도 충분히 잡힌다. 향에서 스쳐가던 스모크는 입 안에서 비중이 더 커진다. 피트 위스키처럼 연기가 뒤덮는 수준은 전혀 아니고, 단맛 사이로 스모크가 한 겹 깔리는 정도다.
피니시 (Finish)
여기가 의외였다. 셰리가 제대로 나온다. 70% 버번이라 바닐라·코코넛이 길게 갈 줄 알았는데, 마지막에 셰리가 먼저 올라온다.
그렇다고 묵직한 셰리는 아니다. 무거운 감을 한 겹 덜어낸 셰리 쪽이다. PX처럼 끈적하지도 않고, 올로로소 풀숙성처럼 짙지도 않다. 30%만 섞은 비율이 이 밸런스를 만드는 것 같은데, 부담이 없다.
향과 맛에서 깔리던 스모크는 피니시에서는 대부분 걷힌다. 몰티함만 은은하게 뒤로 끌려간다. 스모크가 올랐다가 꺼지고, 마지막엔 셰리와 몰트가 남는 구조. 한 잔 안에서 꽤 많은 얼굴이 나온다.
글렌모렌지 라인업 속 위치
글렌모렌지 엔트리는 The Original 10년, 위로 Lasanta 15년(올로로소+PX 셰리), Quinta Ruban 14년(포트 피니시), The Nectar 16년(소테른/화이트 와인 피니시), The Infinita 18년, 그리고 최상위 Signet 순으로 올라간다.
인피니타는 버번이 메인에 올로로소 셰리 30%만 얹힌 구조라, 시트러스·바닐라로 열고 셰리가 뒤에서 받치는 흐름이다. 셰리 비중 큰 쪽을 원하면 같은 라인업 아래쪽인 라산타 15년(풀 셰리 숙성)이 방향이 다르다고 들었는데, 그쪽은 아직 안 마셔봐서 비교는 못 한다.
같은 올로로소 셰리 피니시 계열로 전에 로얄 브라클라 12년을 올린 적 있는데, 그쪽은 셰리가 훨씬 존재감 있게 튀어나오는 편이다. 인피니타는 반대로 모든 요소가 한 겹씩 얇게 깔려 있는 쪽. 셰리 그 자체로 가면 글렌알라키 15년이 훨씬 압도적이다.
버번·셰리·포트 멀티 캐스크 구조가 궁금하면 벤리악 12년 더 트웰브 후기도 있다. 가격대는 완전 다른 라인이지만, 복합성이 어느 방향으로 가는지 비교해보면 재밌다.
마치며
뚜따 직후에 이 정도 밸런스가 나오는 18년 싱글몰트는 흔치 않다. 알콜 부즈 없이 바로 열리고, 향-맛-피니시가 각기 다른 얼굴을 보여주면서도 따로 놀지 않는다. 18만 원 대라는 가격을 빼고 봐도 만족스러운 한 병이다.
평점은 4.3. 16년 더 넥타에 반해서 18년까지 올라간 선택이 맞았다. 근데 가성비만 놓고 보면, 다음에는 또 넥타 16년을 살 것 같다. 18년이 더 복합적이긴 해도, 그 차이가 가격 차를 다 메울 정도는 아니다. 다음 잔은 오픈 2~3주 뒤에 다시 기록해 볼 생각이다. 그때 셰리가 더 짙어지는지, 버번 바닐라가 올라오는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