뚜껑을 따는 순간부터 다르다. 병목에서부터 화사한 과실향이 확 퍼진다. 싱글몰트 위스키와는 시작점 자체가 다른 느낌이다.
까뮤(Camus)는 1863년 설립, 5대째 가족 경영 중인 독립 꼬냑 하우스라고 한다. VSOP는 40% ABV에 위니 블랑(Ugni Blanc) 포도 100%를 쓰고, 프랑스 꼬냑 지역 중 보더리(Borderies) 크뤼를 중심으로 최소 4년 프렌치 오크 캐스크 숙성한 구성이다. 보더리는 꼬냑의 6대 크뤼 중 가장 작은 곳인데, 까뮤가 이 지역에 자체 포도밭을 갖고 있다고 한다. 브랜디와 꼬냑에 대해 더 알고 싶다면 정리글을 참고하면 된다.

테이스팅 노트
향 (Nose)
뚜껑 따자마자 화사한 과실향이 터진다. 그 아래로 바닐라, 오크, 스파이스가 깔리는데, 위스키의 그것과는 결이 다르다. 좀 더 부드럽고 둥글다. 달달한 화이트 와인 비슷한 뉘앙스도 느껴지는데, 포도 증류주라서 그런지 와인의 향 구조가 밑바탕에 깔려 있는 느낌이다. 40도라 알코올 자극은 거의 없고, 코를 가까이 대도 편하게 맡을 수 있다. 싱글몰트에서 가끔씩 스치는 황이나 미네랄 노트가 전혀 없다. 화사한 과실향에 가려진 건지 아예 없는 건지 모르겠는데, 어쨌든 안 느껴진다.
맛 (Palate)
부드럽고 달콤하다. 첫 모금에 과일 잼 같은 단맛이 혀 위에 퍼지면서, 중반부에 적당히 기분 좋은 스파이스가 올라온다. 시나몬이라기보단 백후추에 가까운 뉘앙스. 바디는 가볍진 않은데 묵직하지도 않다. 중간쯤. 끈적한 과실주를 마시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피니시 (Finish)
바닐라다. 깔끔하게 바닐라로 빠지면서 은은한 오크의 따뜻함이 남는다. 길이는 중간 정도. 드라이하지 않고 끝까지 부드럽게 마무리된다. 거칠거나 쓴맛이 올라오는 구간이 없어서 편하게 마실 수 있다.
더 글렌리벳 18년과 비교시음
같은 자리에서 더 글렌리벳 18년과 나란히 놓고 마셔봤다. 비교해보니 방향성이 완전히 다르다.
글렌리벳 18년은 몰티하다. 곡물의 고소함이 베이스에 깔려 있고, 거기에 건살구와 오렌지필, 토피 같은 게 얹혀지는 구조. 숙성에서 오는 깊이감이 있다. 까뮤 VSOP는 그런 곡물 베이스가 아예 없다. 대신 끈적한 과실주 느낌이 전면에 나선다. 같은 “과일향”이라고 해도, 글렌리벳은 말린 과일 쪽이고 까뮤는 생과일에 가깝다.
개인적으로 이 비교를 해보고 나서야 꼬냑이라는 카테고리가 좀 더 이해됐다. 위스키가 곡물에서 출발하는 증류주라면, 꼬냑은 포도에서 출발하는 증류주다. 당연히 풍미의 뼈대가 다를 수밖에 없다. 엔젤스 엔비 포트 캐스크 피니시를 마셨을 때 “와인이나 브랜디 쪽 사람한테 맞겠다”고 느꼈었는데, 까뮤를 마시고 보니 그 감이 맞았던 것 같다.
40도에 대해
싱글몰트에서 40%는 좀 아쉬운 도수다. 향도 맛도 좀 밋밋해지는 경우가 많다. 근데 꼬냑의 40%는 다르다. 애초에 향을 코앞에서 천천히 즐기는 게 꼬냑의 음용법이라, 40도가 오히려 그 목적에 딱 맞는 느낌이다. 높은 도수에서 오는 알코올 자극 없이 과실향을 온전하게 맡을 수 있다.
까뮤 VSOP에 어울리는 안주
- 다크 초콜릿 - 까뮤의 과실 단맛이랑 카카오의 쌉쌀함이 만나면 디저트 한 접시가 따로 필요 없다. 카카오 70% 이상으로 가야 균형이 맞는다
- 건과일 모음 - 말린 살구, 무화과 같은 건과일이 꼬냑의 과실 풍미를 그대로 이어준다
까뮤 라인업
- VSOP - 오늘 마신 병. 40%, 보더리 크뤼 중심
- VSOP 보더리 싱글 에스테이트 - 까뮤 자가 포도밭에서만 생산. 좀 더 프리미엄
- XO - 최소 10년 숙성, 인텐슬리 아로마틱 라인
- XO 보더리 패밀리 리저브 - 싱글 에스테이트 XO
- 일 드 레 - 프랑스 서쪽 섬에서 숙성한 해양 캐릭터 라인
위스키만 마시다가 꼬냑으로 건너온 거라, 아직 비교 대상이 많지 않다. 헤네시나 레미 마르탱 같은 다른 하우스도 마셔봐야 까뮤의 포지션이 더 명확해질 것 같다. 일단 이 가격대에 이 정도 향이면, 식후에 한 잔 하기엔 꽤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