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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년 저숙성에 빌리 워커 이름이 붙은 한정판이라는 조합이 궁금해서 한 병 사봤다. 15년을 워낙 좋게 먹은 기억이 있어 같은 증류소의 어린 병이 얼마만큼 따라오는지, 9만 원 자리에서 어떤 그림이 그려지는지를 보고 싶었다. 온누리상품권 7% 할인을 적용하면 9만 원 초반에 잡힌다.
우드 컬렉션
The Wood Collection: Sherry Series 한정판으로 2024년 4월에 풀린 병이다. 같은 시리즈에 9년 피노 셰리, 9년 아몬티야도가 같이 나왔다. 9년이라는 베이스에 셰리 캐스크 종류만 바꿔서 셋으로 갈라낸 구성. 내가 집어온 건 올로로쏘.
코어 라인업은 8년 - 10년 CS - 12년 - 15년 - 18년. 그 사이 9년 자리에 한정판이 끼어든 모양새다. 빌리 워커는 벤리악ㆍ글렌드로낙ㆍ글렌글라사를 거쳐 2017년 글렌알라키를 인수한 사람. 라벨에 박힌 이름이 셰리 캐스크 작업의 보증서처럼 받아들여진다.
도수는 48%, 무색소ㆍ논칠필터드. 캐스크 구성은 아메리칸 오크 엑스-버번 배럴에서 메인 숙성을 한 뒤 마지막에 올로로쏘 셰리 버트로 옮긴 피니시 방식이다. 셰리 캐스크에서만 끝까지 가져간 게 아니라 마지막에 옮긴 구성이라는 점이 시음 인상에 꽤 직접적으로 박혔다.
색
진하다. 알라키 라인 전반이 색이 잘 나오는 편인데, 9년도 그 가족 얼굴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 다만 15년과 나란히 놓고 비교한다면 한 톤 정도는 옅다. 9년에 피니시만 한 결과치고는 충분히 진한 편이라, 색만 보면 숙성을 더 잡았다고 해도 믿겠다는 인상이 든다.

사오자마자 바로 열었다. 잔에 따라두고 잠깐 두었다가 코를 댔다.
향
먼저 잡히는 건 셰리향인데, 진한 셰리 폭탄 쪽은 아니다. 셰리 폭탄이라고 하면 흔히 맥캘란 12년 셰리 오크나 글렌드로낙 파클라스 쪽이 떠오르는데, 알라키 셰리는 그 직선적인 폭격보다는 조금 더 둥글게 풀어내는 결이 있다.
9년 저숙성에다 방금 따낸 병이라 그런지 알콜이 꽤 도드라진다. 코를 깊게 들이밀면 살짝 밀어내는 자극이 있다. 그 너머로 잘 익은 사과, 약간의 건과일이 잡힌다. 셰리 캐스크 특유의 미네랄 같은 결도 약하게 있는데, 셰리라면 감안하는 수준이라 거슬리지는 않는다. 솔직히 향만 놓고 보면 기대치를 그렇게 높이 잡진 않게 되는 첫인상이었다.
맛
향에서 잡았던 인상과는 다르게, 입에 넣자마자 매우 맛있다. 이 갭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48%라는 도수가 바디감을 적당히 받쳐주고, 약간의 스파이시함이 살짝 깔린다. 입에 머금고 굴리면 결이 한 겹씩 풀리는 재미가 있다. 버터스카치 톤의 단맛, 셰리에서 온 묵직한 단맛, 그 위에 도수가 만든 약간의 자극 - 이 세 가지가 서로 다투지 않고 한 자리에 잡혀 있다.
복합성이 깊은 술이라고 하긴 어렵다. 다만 한 모금 한 모금이 단조롭지 않고, 머금는 시간에 따라 잡히는 결이 살짝씩 바뀐다는 점에서 두 잔째까지 지루하지 않게 들어간다.
피니시
피니시에서 향에서 약하게 비쳤던 셰리 요소가 본격적으로 살아난다. 버터스카치가 먼저 깔리고, 그 위로 꾸덕한 흑설탕 시럽 같은 진한 단맛이 얹힌다. 어릴 적 달고나를 입에 물었을 때 입천장에 들러붙던 그 감각이 떠올랐다. 건과일도 같이 깔리는데, 전형적인 셰리 라인이긴 한데 일반적인 셰리 위스키들보다 한층 더 무겁고 묵직하고 농도가 진하다.
피니시까지 가서야 “아, 이게 빌리 워커가 9년에 셰리 피니시를 얹은 이유구나” 싶은 그림이 완성된다. 향에서 비교적 평범했던 인상이 입과 피니시로 가면서 점점 살이 붙는 구조다. 끝맛이 길게 끌지는 않는데, 끌고 가는 동안의 농도 자체가 단단하다.
9년 vs 10년 CS vs 15년
내 입에서의 만족도는 15년 > 9년 올로로쏘 셰리 > 10년 CS 순이었다. 같은 증류소인데도 결이 꽤 갈린다.

글렌알라키 15년은 말 그대로 다른 차원이다. 복합성을 다 포기해도 된다고 느낄 만큼 그냥 직진으로 맛있다. 빌리 워커가 내려준 선물 같다는 표현이 과장이 아니다. 한 잔만 마셔도 “왜 다들 이걸 추천하는지” 의문이 풀린다.
10년 캐스크 스트렝스는 도수 자체가 57~59%대로 뛰어 있어 스파이스가 단맛 위에 올라타버리는 인상이 있었다. 셰리의 단맛을 더 즐기고 싶은 사람 입장에서는 그 스파이스가 살짝 가림막처럼 작동한다.
9년 올로로쏘 셰리는 그 사이에 영리하게 자리 잡았다. 도수 48%로 부담 없고, 단맛은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고, 10만 원 아래라 손이 쉽게 간다. “그냥 맛있으라고 만든 술”이라는 인상이라 복합성은 아쉽지만, 그 목적 하나만 보면 잘 만든 병이다.
9년 9만 원, 15년 14만 원대. 6년 차이에 6만 원 차이로 보면 자연스러운 갭이다.
가성비
셰리의 녹진하고 달달한 결을 찾는 거라면, 6만 원 더 얹어서 15년 쪽이 답이다. 9년이 못 만든 술이라서가 아니라, 15년의 만족도 점프가 6만 원보다 크게 느껴져서다.
평점은 4.1점. 9만 원에 셰리 결을 깔끔하게 즐기고, 도수가 부담 없고, 빌리 워커의 캐스크 작업을 한정판으로 짚어볼 수 있다는 가치는 분명하다. 다만 위쪽이 너무 강력해서 9년 한 병만으로는 “여기서 멈춰도 되겠다”가 잘 안 나온다. 셰리 캐스크 위스키들이 공유하는 결을 입문 단계에서 짚는 용도라면 9년도 충분하다.
피노 셰리, 아몬티야도도 궁금하긴 하다. 같은 9년 베이스에서 셰리만 바꿔 어디까지 갈라지는지, 다음 우드 컬렉션을 만나면 잔을 나란히 놓고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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